지난달, 한국직업능력연구원에서 ‘직업의식 및 직업윤리의 국제비교 연구(2023)’를 발표했다. 여기에는 매년 행해오던 ‘직업 위세’ 즉 직업의 사회적 지위에 대한 인식 조사가 포함되었고, 여러 언론에서 이 결과를 자세히 다루었다.
직업 위세 순위와 격차의 문제
ⒸSBS | SBS뉴스 영상 갈무리, “[친절한 경제] ‘한국, 직업 귀천 가장 따졌다’…한중일 vs 미독 놀라운 직업의식 차이는” (2024.03.18).
한국인들은 15개의 직업 중에서 가장 높은 직업 위세로 국회의원을 꼽았고, 가장 낮은 지위로 공장 근로자, 음식점 종업원, 건설 일용 근로자를 말했다. 이러한 결과는 현재의 산업 현장을 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수많은 이주민 노동자들이 공장, 음식점, 건설 현장을 채워가고 있으며, 이는 당연히 한국인들이 이러한 직업을 선호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단순히 월급의 많고 적음이라는 문제를 넘어서 한국 사회 구성원들이 갖는 직업에 대한 인식이 담겨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라고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귀천이 있는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더 엄밀히 말하면, 직업 귀천 의식은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 속에 뿌리 깊이 박혀 있는 하나의 문화라고 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우리는 직업 위세가 가장 낮은 직업군에서 이주민 노동자들은 만나게 되며, 우리 사회는 직업과 국적 등으로 더욱 계층화되어가고 있다.
사실 이러한 현상은 우리 사회만의 문제는 아니다. 조사 대상이 된 미국, 중국, 일본, 독일 모두 공장 근로자, 음식점 종업원, 건설 일용 근로자 등 육체노동이 중요한 직업의 위세를 가장 낮게 평가했다. 우리 생활에 필수불가결한 의식주의 '식'과 '주'를 책임지는 직업군이 도리어 낮게 평가받는 것이다. 취약계층을 돕는 사회복지사 역시 11위 또는 12위를 기록했는데,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에 대한 사회적 필요성과 그 업무의 과중함에 비해서는 정말 아쉬운 결과가 아닐 수 없다.
Ⓒ한국직업능력연구원 | 김승보 외 5인, <직업의식 및 직업윤리의 국제비교 연구> (2023.12.28), 197쪽.
우리나라 직업 위세 격차: 4.16(국회의원) – 1.86(건설일용근로자) = 2.30
5개국 평균 직업 위세 격차: 3.73(국회의원) – 2.60(건설일용근로자) = 1.13
직업의식 조사결과에서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와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것이 있는데, 바로 ‘격차’의 문제이다. 한국은 조사 대상이 된 5개국(한국, 중국, 미국, 일본, 독일) 중에서 가장 큰 직업 위세 격차를 보였다. 가장 높은 지위와 가장 낮은 지위에 대한 인식을 비교했을 때, 미국, 일본, 독일보다는 2.5배, 중국보다는 1.5배 정도의 큰 격차가 나타난 것이다. 즉 조사결과는 우리 사회문화에 직업 귀천이 ‘강하게’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직업소명설과 신앙인의 삶
신앙적 관점으로 보면 어떨까? 종교개혁의 전통에는 ‘직업소명설’이라는 것이 있다. 루터와 깔뱅을 통해 잘 알려진 것으로, 우리의 직업은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이며 이를 통해 이웃과 세상을 유익하게 하고 하나님의 뜻을 일구는 일에 참여한다는 것이다. 즉 모든 직업이 하나님과 연결되어있기에 중요하고 가치있는 일이며, 따라서 직업의 우열은 없다.
불안정한 노동현장 속에서 일생 동안 직업의 변화를 수차례 경험하는 현대인들에게, ‘직업소명설’은 조금은 먼 이야기일 수 있다. 그래서 이를 현대적으로 해석하자면, 모든 일터는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현장이며 우리의 노동은 사회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거룩한 일이라는 의미가 된다. 즉 여전히, 모든 일터는 하나님과 연결되어있기에 일터와 직업의 귀천은 없다.
직업 귀천이 명확한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말은 하루하루를 다시금 성실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의미와 희망을 주는 말이 된다. 그러나 이 말만 믿고 성실함에만 몰두하는 것은, 한편으로 현실의 직업 귀천 문제를 다루지 못하고 이러한 문화를 영속시키는 일이 될 수도 있다. 현재의 많은 사회적 문제들이 이와 연결되어 있다. 교육제도의 문제는 언제나 직업 귀천의 문화와 연결되고, 이주민 노동자들의 하위계층화 현상 역시 직업 서열화 현상과 그 궤를 같이 한다.
‘모든 직업과 일터는 하나님의 현장이다.’ 이 믿음 하나로 살아가기에는 사회적 현실이 결코 녹록지 않다. 사실 인류 역사에서 직업 귀천이 없는 사회가 이루어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육체노동의 가치를 인정하고 이러한 직업군에 종사하는 이들을 귀하게 여기는 교회가 되기를 바란다. 약하고 소외된 이들을 섬기는 일에 종사하는 사회복지사와 같이, 묵묵히 사회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이들을 귀하게 여기는 교회가 되기를 바란다. 나아가 이러한 사회적 인식을 바꾸어가는 일에 교회공동체가 함께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하나님의 현장인 각자의 일터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이를 넘어서 모든 직업이 하나님 앞에서 귀중함을 인정하고 사회적 지위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것, 우리 자녀들이 사회적 인식보다 하나님 앞에서 찾은 자신의 뜻을 따라 직업을 찾아갈 수 있는 것. 믿음의 차원을 넘어서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야 할 하나님 나라의 사회문화이다.
김용준 (문화선교연구원)
지난달, 한국직업능력연구원에서 ‘직업의식 및 직업윤리의 국제비교 연구(2023)’를 발표했다. 여기에는 매년 행해오던 ‘직업 위세’ 즉 직업의 사회적 지위에 대한 인식 조사가 포함되었고, 여러 언론에서 이 결과를 자세히 다루었다.
직업 위세 순위와 격차의 문제
ⒸSBS | SBS뉴스 영상 갈무리, “[친절한 경제] ‘한국, 직업 귀천 가장 따졌다’…한중일 vs 미독 놀라운 직업의식 차이는” (2024.03.18).
한국인들은 15개의 직업 중에서 가장 높은 직업 위세로 국회의원을 꼽았고, 가장 낮은 지위로 공장 근로자, 음식점 종업원, 건설 일용 근로자를 말했다. 이러한 결과는 현재의 산업 현장을 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수많은 이주민 노동자들이 공장, 음식점, 건설 현장을 채워가고 있으며, 이는 당연히 한국인들이 이러한 직업을 선호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단순히 월급의 많고 적음이라는 문제를 넘어서 한국 사회 구성원들이 갖는 직업에 대한 인식이 담겨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라고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귀천이 있는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더 엄밀히 말하면, 직업 귀천 의식은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 속에 뿌리 깊이 박혀 있는 하나의 문화라고 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우리는 직업 위세가 가장 낮은 직업군에서 이주민 노동자들은 만나게 되며, 우리 사회는 직업과 국적 등으로 더욱 계층화되어가고 있다.
사실 이러한 현상은 우리 사회만의 문제는 아니다. 조사 대상이 된 미국, 중국, 일본, 독일 모두 공장 근로자, 음식점 종업원, 건설 일용 근로자 등 육체노동이 중요한 직업의 위세를 가장 낮게 평가했다. 우리 생활에 필수불가결한 의식주의 '식'과 '주'를 책임지는 직업군이 도리어 낮게 평가받는 것이다. 취약계층을 돕는 사회복지사 역시 11위 또는 12위를 기록했는데,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에 대한 사회적 필요성과 그 업무의 과중함에 비해서는 정말 아쉬운 결과가 아닐 수 없다.
Ⓒ한국직업능력연구원 | 김승보 외 5인, <직업의식 및 직업윤리의 국제비교 연구> (2023.12.28), 197쪽.
직업의식 조사결과에서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와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것이 있는데, 바로 ‘격차’의 문제이다. 한국은 조사 대상이 된 5개국(한국, 중국, 미국, 일본, 독일) 중에서 가장 큰 직업 위세 격차를 보였다. 가장 높은 지위와 가장 낮은 지위에 대한 인식을 비교했을 때, 미국, 일본, 독일보다는 2.5배, 중국보다는 1.5배 정도의 큰 격차가 나타난 것이다. 즉 조사결과는 우리 사회문화에 직업 귀천이 ‘강하게’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직업소명설과 신앙인의 삶
신앙적 관점으로 보면 어떨까? 종교개혁의 전통에는 ‘직업소명설’이라는 것이 있다. 루터와 깔뱅을 통해 잘 알려진 것으로, 우리의 직업은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이며 이를 통해 이웃과 세상을 유익하게 하고 하나님의 뜻을 일구는 일에 참여한다는 것이다. 즉 모든 직업이 하나님과 연결되어있기에 중요하고 가치있는 일이며, 따라서 직업의 우열은 없다.
불안정한 노동현장 속에서 일생 동안 직업의 변화를 수차례 경험하는 현대인들에게, ‘직업소명설’은 조금은 먼 이야기일 수 있다. 그래서 이를 현대적으로 해석하자면, 모든 일터는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현장이며 우리의 노동은 사회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거룩한 일이라는 의미가 된다. 즉 여전히, 모든 일터는 하나님과 연결되어있기에 일터와 직업의 귀천은 없다.
직업 귀천이 명확한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말은 하루하루를 다시금 성실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의미와 희망을 주는 말이 된다. 그러나 이 말만 믿고 성실함에만 몰두하는 것은, 한편으로 현실의 직업 귀천 문제를 다루지 못하고 이러한 문화를 영속시키는 일이 될 수도 있다. 현재의 많은 사회적 문제들이 이와 연결되어 있다. 교육제도의 문제는 언제나 직업 귀천의 문화와 연결되고, 이주민 노동자들의 하위계층화 현상 역시 직업 서열화 현상과 그 궤를 같이 한다.
‘모든 직업과 일터는 하나님의 현장이다.’ 이 믿음 하나로 살아가기에는 사회적 현실이 결코 녹록지 않다. 사실 인류 역사에서 직업 귀천이 없는 사회가 이루어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육체노동의 가치를 인정하고 이러한 직업군에 종사하는 이들을 귀하게 여기는 교회가 되기를 바란다. 약하고 소외된 이들을 섬기는 일에 종사하는 사회복지사와 같이, 묵묵히 사회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이들을 귀하게 여기는 교회가 되기를 바란다. 나아가 이러한 사회적 인식을 바꾸어가는 일에 교회공동체가 함께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하나님의 현장인 각자의 일터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이를 넘어서 모든 직업이 하나님 앞에서 귀중함을 인정하고 사회적 지위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것, 우리 자녀들이 사회적 인식보다 하나님 앞에서 찾은 자신의 뜻을 따라 직업을 찾아갈 수 있는 것. 믿음의 차원을 넘어서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야 할 하나님 나라의 사회문화이다.
김용준 (문화선교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