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적한 교회를 위한 배제의 불쾌함 - 책 『쾌적한 사회의 불쾌함』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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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많은 교회는 더없이 쾌적한 공간이 되었다. 정돈된 좌석, 정숙한 예배, 예측 가능한 순서. 코로나 시대를 지나며 우리는 ‘안전한 모임’에 대해 더욱 민감해졌고, 그 결과 교회 역시 위생과 질서, 관리의 측면에서 한층 더 정교해졌다. 낯선 사람이나 돌발적인 상황이 개입될 여지는 점점 줄어들었다. 모든 것이 원활하게 흘러가는 예배. 그것이 우리가 기대하는 교회의 모습이 되었다. 그러나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이 쾌적함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누구를, 무엇을 배제하고 있는가.


『쾌적한 사회의 불쾌함』은 바로 이 지점에 질문을 건넨다. 우리가 추구하는 ‘쾌적함’은 과연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작동하는 가치일까. 이 책은 현대 사회가 위생, 안전, 효율을 중시하는 과정에서 어떤 것들이 자연스럽게 주변으로 밀려나게 되었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냄새나 소음 같은 감각적 불편함뿐 아니라,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나 다양한 삶의 방식들 역시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간다. 흥미로운 지점은, 이러한 변화가 단순히 환경을 개선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점을 짚어낸다는 데 있다. 쾌적함을 향한 감각이 강화될수록, 우리는 타인의 취약함이나 삶의 불균형을 마주하는 방식 자체를 점점 낯설게 느끼게 된다. 불편함을 줄이는 과정 속에서, 어느새 함께 감당하던 삶의 일부들이 조금씩 멀어지는 것이다.


실상, 우리는 ‘정상성’이라는 기준을 세움으로써 얼마나 많은 존재들을 배제하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사이보그가 되다』1)에서 김초엽은 비장애인의 감각으로는 인지하기 어려운 차별의 구조를 지적한다. 청각 장애를 앓고 있는 이에게 당연하다는 듯 비장애인적 기준을 대입하고, 아무렇지 않게 배려 없는 말들을 쏟아낸다. 정작 당사자에게는 전달되기 어려운 방식으로 말이다. 한동안 시끄러웠던 한 단체의 대중교통 시위에 대해, 많은 이들은 그들이 왜 그렇게까지 해야만 하는가 그 이유에 집중하기 보다, 나의 일상을 파괴하는 행위로써 일련의 과정을 바라본다. ‘정상적’ 범주를 벗어나 타인의 일상을 방해해야만 했던 그들의 간절함은 주목되지 않는다. 

1) 김원영, 김초엽, 『사이보그가 되다』, 사계절, 2021


이 문제의식을 교회로 가져오면, 상황은 결코 가볍지 않다. 오늘의 교회는 점점 ‘문제없는 사람들’만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 되어가고 있다. 예배는 흐트러지지 않아야 하고, 아이들은 조용히 앉아 있어야 하며,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이들은 공동체의 리듬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노숙인이 예배당 문을 열고 들어오는 상황은 환대의 장면이기보다 곤란한 사건으로 인식된다. 누군가의 돌발적인 행동은 ‘함께 감당해야 할 삶의 일부’가 아니라 ‘관리해야 할 변수’로 취급된다.

물론 이러한 변화에는 이유가 있다.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질서가 필요하고, 모두가 불편함 없이 예배드릴 수 있는 환경 역시 중요하다. 그러나 문제는 그 기준이 점점 더 ‘예측 가능성’과 ‘통제 가능성’에 맞추어지고 있다는 데 있다. 그 결과, 교회는 다양한 삶의 조건을 지닌 사람들이 부딪히는 공간이 아니라, 유사한 감각과 리듬을 가진 사람들만 남는 공간으로 재편된다.


한때 교회는 삶과 죽음이 함께 머물던 자리였다. 병든 이들이 찾아왔고, 가난한 이들이 머물렀으며, 공동체는 그들의 삶과 죽음에 관여했다. 『강아지 똥』의 작가 권정생 선생은 교회 종지기로 생활하면서, 그의 저서 『빌뱅이 언덕』에서 누가 예수의 친구였는가 되돌아본다.2) 교회는 가난하고 병든 자들, 어딘가 이질적이고 사회에 녹아들기 어려운 존재들을 위한 공간이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교회는 이러한 영역을 점점 외부로 위탁한다. 돌봄은 전문 기관의 몫이 되고, 의사와 상담사에게 육체와 정신의 질병을 맡기며, 불편한 상황은 가능한 한 예배의 안으로 들어오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그 자리에 남은 것은 ‘문제없이 운영되는 시스템’으로서의 교회다. 물론 교회가 감당하기 힘든 영역들을 전문가에게 맡기는 일은 서로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지만, 문제는 그들을 공동체의 바깥으로 밀어낸다는 데에 있다. 

우리는 어떤 교회를 지향하고 있는가. 모든 것이 문제없이 원활하게 돌아가는 공동체, 혹은 예상치 못한 타자와의 만남이 끊임없이 발생하는 공동체. 이 둘은 동시에 양립하기 어려워 보인다. 쾌적함을 유지할수록, 우리는 누군가를 배제하게 된다. 

2) '예수는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이렇게 눈물겹도록 힘겹게 살았다. 눈먼 거지의 빛이 되고 절름발이와 앉은뱅이와 난쟁이의 친구가 되었다. 세리와 창녀와 간질병 환자와 귀신 들린 자와 남편에게 버림받고 이웃에게 따돌림받은 이들의 따뜻한 친구가 된 예수, 그가 우리의 구세주인 것이다.'  권정생, 『빌뱅이 언덕』, 창비, 2012, 167쪽


어쩌면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은 더 나은 시스템이 아니라, 더 많은 불편함을 견디는 능력일지 모른다. 아이들이 예배 중에 돌아다니는 일, 낯선 사람이 공동체 안으로 들어오는 일, 누군가의 삶이 기존의 질서를 흔드는 일. 이런 장면들을 ‘문제’로만 규정하지 않고, 함께 감당해야 할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태도 말이다. 그것은 효율과는 거리가 멀고, 때로는 공동체 전체를 느리게, 불편하게 만들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에서, 교회는 다시금 ‘함께 있음’의 의미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누구를 배제함으로써 이 쾌적함을 유지하고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과연, 불편한 사람들과 함께 예배드릴 준비가 되어 있는가.




김유민 연구원(문화선교연구원, 한양대(대중문화 석사, 국문과 박사과정))

불완전한 편린이 모여 빛을 낸다면, 그만큼 완전한 것이 또 있을까.
언뜻 희망이 없어 보이는 세상에서 '소망'을 동경(憧憬)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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