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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나라 권력 영광』 - 우리는 어떤 ‘나라’에 복무해야 하는가

2025-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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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앨버타(Tim Alberta)가 쓴 『나라 권력 영광』(The Kingdom, the Power, and the Glory)은 미국의 복음주의자들의 실태에 관한 저널리즘으로 가득 차 있다. 첨예한 신학적인 논쟁보다, 미국 땅에 발 붙이고 살아가는 교회들에 주목한다. 그리고 그 교회들이 보수 정치와, 특별히 트럼피즘과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는지를 집요하게 파헤친다.


미국이라는 ‘나라’

오늘날 수많은 미국인들은 그들이 살아가는 나라에 대해 상당한 자부심을 느낀다. <뉴스룸 The Newsroom>(2012)이라는 드라마의 한 장면을 보면, 어떤 컨퍼런스에 참석한 한 학생이 미국은 왜 위대한 나라인가에 대해 질문한다.

이어지는 주인공 ‘윌’의 답변은 이 시즌의 백미다. 더 이상 미국은 위대하지 않다고 말하는 그의 대답에 자존심이 상하기도, 그러나 반론을 제기하기도 마땅치 않은 수많은 이들의 표정은 오늘날 미국인들의 생각을 대변하는 것일 테다.

그런데 과연 신의 선택을 받은 나라란 존재할까. 이때의 나라는 ‘국가’와 같은 개념으로 치환될 수 있을까.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에 왕국을 세우지 않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을 때, 이미 이방 나라로의 하나님 나라 확장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베드로와 바울 같은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이 세상의 권력에 굴복하지 않고 기꺼이 박해를 받았던 것은 세상 죄를 짊어지고 대신 죽으시고 다시 사신 예수의 뜻에 전적으로 동의했기 때문이다.

앨버타의 취재에 의하면, 미국 복음주의자들의 교회는 자신들이 이 같은 박해를 받는다고 여긴다. 그러나 그 박해가 그리스도께서 친히 행하셨던 소외된 자들과의 연대 속에서 ‘사랑’을 증거 하기 때문이 아닌, 오히려 그들을 직접적으로 배척하고 ‘박해’‘박해’ 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고 꼬집는다.

“박해가 얼마나 고귀한 것인지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한 번도 박해를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권력’에의 욕망

애초에 땅 위의 권력은 그리스도께서 목적에 두었던 방향성이 아니다. 당대를 살아내던 사람들 사이에서 소위 ‘핫한 인플루언서’로서의 영향력을 가졌던 그리스도가 십자가의 길을 기꺼이 걸었던 것은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가득 넘치는 진정한 ‘나라’를 실현시키기 위함이었다. 로마를 전복시키고 새로운 ‘국가’를 건설한다거나 로마를 ‘정복’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으셨다.

그러나 현재의 미국은 확실히 ‘국가’를 지키는 것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딱히 종교적인 사람이 아닌 트럼프가 종교적 수사를 활용하고 복음주의 교회들을 포섭하는 것은 그들의 애국심을 활용해 여론을 형성하고 자신의 방향에 지지를 얻기 위함이다. 그런데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명목 아래 리더십들에 대한 미국 시민들, 특히 복음주의 교회에 소속된 이들의 판단력은 현저히 떨어지고 있었다.

앨버타의 취재 중 일부를 살펴보자.

파리에서 활동하는 미국 출신 기자 토머스 채터턴 윌리엄스(Thomas Chatterton Williams)는 볼프가 설명한 “미국 상황”에 대해 마지막으로 의견을 밝혔다.

“저희 외가 쪽이 복음주의 기독교인이고, 특히 이모는 그리스도와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사는 독실한 분입니다”라고 윌리엄스는 말했다. “이모는 트럼프가 매우 결함이 많은 인간이라고 말하면서도 트럼프에게 두 번이나 투표했습니다. 힐러리 클린턴처럼 정말로 사악한 여자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요. 그러면서 하나님은 항상 결함이 있는 인간들과 함께 일하시면서 더 큰 선을 이루신다며 자신을 합리화했습니다.”

윌리엄스는 그 이모가 최근 캘리포니아에서 조지아로 이사했다고 말했다. 최근 전화 통화에서 이모는 그에게 공화당 상원의원 후보인 허셜 워커에게 투표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데일리 비스트>의 폭로 기사를 시작으로, 워커가 최소 한 번 이상 낙태 비용을 댔다는 신뢰할 만한 증거를 제시한 수많은 뉴스 보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는 중요하지 않았다. 워커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아들(다른 세 명은 인정하지 않았다)이 뉴스 보도를 보고 자칭 “도덕적이고 기독교적이며 올바른 사람”인 아버지가 사실은 자신과 어머니를 버리고 “여러 여자와 놀아났고” “우리를 죽여 버리겠다고 협박했다”라고 트위터에 올렸다는 사실도 중요하지 않았다. 윌리엄스는 이런 명백한 인격적 결함이 이모에게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워커도 트럼프처럼 ‘올바른’ 팀에서 뛰고 있었기 때문이다.

팀 앨버타, 『나라 권력 영광』, 이은진 역, 2024, 364-365면

권력을 가진 자들은 너무도 쉽게 사람들을 휘어잡는다. 그들의 ‘올바름’과 그리스도적 ‘올바름’을 일치시킬 수 있는가. 앨버타는 자신들이 주류라는 사실을 인지하려 하지 않은 채, 그저 프레임에 몸을 싣는 이들을 조명하며, 미국 기독교에 남아있는 가치란 무엇일까 개탄한다. 결국 권력에 기생하거나, 나아가 땅 위의 권력을 추구함에 다름 아닌 것이다.


어떤 승리가 ‘영광’인가

이렇게 ‘나라’를 되찾기 위해 ‘권력’과 손잡은 미국 복음주의 교회들은 ‘영광’으로 향한다. 앨버타는 드림시티교회에서 열렸던 ‘자유의 밤’ 집회에 주목했다.

“적은 미국 교회가 침묵하고 방관하기를 무엇보다 원할 겁니다.” 바넷의 설교단에 서서 커크는 이렇게 선언했다. “만약 미국 교회가 일어서지 않는다면, 폭정과 전체주의는 계속 확산할 겁니다.”...

이 특별한 날 밤, 바넷은 드림시티교회에 모인 청중에게 홍보 영상을 보여 주었다. 이달 말에 교회에서 열릴 콘퍼런스 “이 반석 위에”에 관한 내용이었다. 약 2천 명의 목사가 드림시티교회에 와서 “단호한 자세로” 좌파의 의제를 물리칠 방법을 배울 예정이었다.

팀 앨버타, 『나라 권력 영광』, 이은진 역, 2024, 463-464면

앨버타의 기록에 의하면 바넷과 커크는 ‘적’을 분명하게 상정하고 있었다. 그들은 ‘폭정’과 ‘전체주의’에 맞서야 함을 상기하면서, 침묵하는 이들에게 동기를 부여했다. 무엇이 옳은가 고민하거나, 지금으로선 어떤 것도 확정할 수 없다고 판단하는 이들, 과격함을 꺼려하며 어떤 선택을 미루거나 고민하는 일에 진저리 치는 이들까지를 아울러 양비론자라고 칭하거나 회색 지대에서 침묵하는 이라 상정하고, 어떤 입장을 취하도록 몰아세우는 것이다. 입장을 정하고 ‘적’이 규정되었다면 ‘승리’를 향해 달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해서 쟁취하는 승리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이때 우리가 다시 상기해야 하는 ‘승리’는 ‘부활’이다. ‘죽음’을 오롯이 받아들이고서, 이를 다시 ‘생’으로 전환시킨 부활의 승리야말로 예수를 믿는 이들이 걸어내야 할 승리의 길이다. 성전을 엎으시고 바리새인들과 다투셨던 그리스도적 투쟁은 그들을 멸망시킴으로써 완성된 것이 아니라, 친히 십자가 상에 달리심으로, 그리고 다시 살아나심으로 완성되었다.



결국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복무해야 하는 곳은 ‘하나님 나라’다. 앨버타는 미국의 복음주의 교회들에 대한 조사를 감행하며 상당 부분 날카롭고도 가차 없는 시선을 유지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전한 ‘하나님 나라’로서의 교회, 보이지 않는 영원을 소망한다.

한국 사회가 처한 현실, 정치, 그리고 교회 사이의 지형도가 요동치고 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실제적 개념으로서의 ‘나라’와 ‘권력’, 그리고 ‘영광’을 향한 열망이 뒤엉켜 있다. 팀 앨버타의 저널리즘 『나라 권력 영광』은 미국의 상황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그 맥락은 한국과 많은 지점에서 다르다. 그러나 미국의 사례를 통해 지금의 한국을 성찰하며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숙고하게 하는 바, 하 수상한 시절을 두고 함께 들여다봄직하다.


김유민 연구원 (문화선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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