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과 청소년들] "존재의 버팀목이 되는 교회가 필요하다"

2023-05-26
조회수 1138

 


학원가 마약 음료

2023년 4월 3일, 대치동 학원가에 이른바 ‘마약 음료’가 배포되었다. 필로폰 3~4회 투약분을 탄 우유에 “메가 ADHD”라는 이름이 붙었고, 공부에 도움이 되는 음료라며 몇몇 학생들에게 배포되었다. 그리고 8명의 학생과 1명의 학부모가 이를 마셨다. 이후 마약 음료를 배포한 일당은 음료를 마신 학생들의 부모에게 연락했고, ‘자녀가 마약을 투약한 마약사범이 될 수 있으니, 이를 조용히 넘기려면 돈을 보내라’라는 식으로 협박했다. 수많은 학생들로 붐비는 학원가에서 대낮에 마약이 배포된 것도 충격이었고, 이를 통해 돈을 뜯어내려는 범죄 행태도 너무나 충격이었다.

타인이 모르게 마약을 먹여서 마약에 중독시키는 이러한 범죄 행태를 흔히 ‘퐁당 마약’ 수법이라고 부른다. 보통은 유흥업소와 같은 공간에서 남성이 여성을 성폭행하려는 의도로 사용되는 수법인데, 이미 몇 년 전에 강남의 클럽 등지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대중들에게 인식되었다.


‘퐁당 마약’ 수법
마약을 타인에게 몰래 먹여서 중독시키고, 이를 통해 타인을 착취의 대상으로 삼는 것


마약이 다른 범죄와 맞물리면서 얼마나 치명적일 수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심각하게 악질적인 범죄 행태가 이번에는 학원가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질문이 생긴다. 학생들은 왜 낯선 이들이 거리에서 나눠주는 음료를 받아 마셨던 것일까?

배포된 마약 음료 [출처=서울강남경찰서]

강남 학원가에는 ADHD 치료제가 공부에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져있다. ‘공부 잘하는 약’, ‘스터디 드러그(study drug)’라고 불리는 이 약들은 마약류에 해당하는 ‘향정신성의약품’으로서 인간의 중추신경계에 작용하고, 정신적 능력 및 상태에 영향을 미치는 약들이다. 학습 능력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입증되지는 않았지만, 수능을 앞둔 학생들 사이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서울 송파구, 강남구, 서초구와 같이 사교육 1번지에서의 ADHD 치료제 처방은 다른 곳에 비해 월등히 많고, 수능이 다가오는 10월과 11월에 처방이 늘었다가 12월부터는 다시 감소한다고 한다. 이러한 통계는 학생들이 마약류를 오남용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1

부작용은 분명히 있다. 의존성과 금단증상이 있고, 신경과민, 식욕부진, 성장저하 등이 나타날 수 있다. 그럼에도 이러한 처방이 계속해서 이루어지는 것은, 극한의 경쟁에 내몰려 심리적·사회적 압박에 놓인 입시생들의 고통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번 학원가 마약 배포 사건은 학생들이 처한 이러한 사회적 상황과 범죄조직의 악질적인 행태가 마약을 통해 만나게 된 우리 사회의 씁쓸한 단면이다.

 

 

고교생 펜타닐 패치 사건

2021년 5월, 창원과 김해 지역의 10대 청소년 54명이 마약성 진통제 펜타닐(Fentanyl)을 임의로 투약했다가 적발되었다. 펜타닐은 모르핀보다 50~100배 높은 효과를 지닌 마약성 진통제이다. 여기서 마약성 진통제란, 법률에 의해 ‘마약’으로 지정된 성분이 들어있는 진통제를 말하며, 투약할 경우 마약과 같은 효과를 보이기에 의사의 처방을 통해서만 구할 수 있다. 강력하지만 부작용이 강하고 조금만 남용해도 사망에 이를 수 있는 만큼(청산가리 치사량의 2%만으로도 사망에 이를 수 있음), 펜타닐은 말기 암이나 심한 통증을 겪는 환자들에게만 허용되는 진통제이다. 이러한 펜타닐이 몸에 붙이는 형태의 패치로 10대 청소년들 사이에 퍼지게 된 것이다.

펜타닐 패치 [출처=경남경찰청]

펜타닐을 맛본 학생들은 경남·부산 지역의 병원을 찾아다녔다. 쉽게 처방해주는 병원만 있으면 어디든 찾아갔고, 위장 환자가 되어 펜타닐을 처방받았다.

‘교통사고의 후유증으로 통증이 심한데, 펜타닐이 아니면 통증이 가라앉지 않는다. 펜타닐 패치를 처방해달라.’

물론, 이러한 처방은 정상적인 처방이 아니다. 펜타닐 패치를 처방하려면 극심한 통증을 확인해야 하고 적절한 검사와 진료 과정을 거쳐야 한다. 몇몇 병원들은 처방을 거절했지만, 20개 이상의 병원들은 이들의 요구를 거절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직 스무 살도 되지 않은 청소년들에게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했다. 이렇게 청소년들의 손에 들어간 펜타닐 패치는 여러 학생들에게로 펴졌고, 이들은 공원이나 상가의 화장실, 그리고 심지어 학교 내에서도 펜타닐을 투약했다.

이 청소년들이 처음에 펜타닐을 투약하게 된 동기는 또래 친구의 권유나 호기심이었다. 서울의 지인을 통해 한 학생이 펜타닐을 가져왔고, 이 친구를 통해 수십 명의 청소년들에게까지 퍼지게 된 것이다. 파스처럼 생긴 펜타닐 패치의 특성상 마약이라는 인식을 갖기 힘들었다. 호기심에 한두 번 투약한 뒤에는 더 이상 자발적 의지가 아니라, 투약하지 않으면 찾아오는 금단증상 때문에 다시 펜타닐을 찾고 투약하게 되었다. 이들은 펜타닐 투약자이면서, 구매한 금액의 10배로 펜타닐을 파는 마약 판매자가 되었다.2

 

한 마약업자의 말이다.

“돈 많이 벌고 싶으면 옆 사람 펜타닐 시키고,
 인생 망하고 싶으면 네가 펜타닐 해라.

마약이 인생에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지는 마약 관련자들도 분명하게 알고 있다. 그러나 중독자들이 마약을 끊지 못하는 것은 애초부터 개인의 의지만으로는 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약 생태계는 이를 집요하게 파고들어 여러 인생을 파멸의 길로 몰아넣으며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고 있다.

 

 

청소년 마약 상황

마약류 범죄는 대표적인 ‘암수범죄’에 속한다. 암수범죄란 “수사기관이 인지하지 못했거나 수사 결과 증거 불충분으로 입증되지 못한 범죄”를 말하는데, 겉으로 드러나는 범죄 수보다 수면 아래에 감추어진 수가 훨씬 많다는 뜻이다. 2019년 연구된 경찰행정 분야의 논문에서는 마약류 범죄의 암수율을 28.57배로 예측했다. 즉 마약류 사범의 수가 1만 명이라면, 실제 마약류 관련자는 28만 명이 넘을 것으로 본 것이다.3

이처럼 겉으로 드러나기 어려운 마약류 범죄의 특성상 통계적으로 더 중요한 것은 절대적 수치보다 변화의 추세라고 할 수 있다. 마약류 사범은 2015년에 10,000명을 넘어선 이후 대체로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2022년에는 18,395명이 마약류 관련 범죄로 단속되었다.

주지할 점은 마약류 사범들의 연령이 점차 감소하고 있다는 점이다. 연령별 분포를 보면, 2018년까지는 재범 비율이 높은 40대가 가장 많았으나, 2019년부터는 30대가 가장 많았고, 2021년부터는 20대가 가장 많은 수를 차지했다. 청소년·청년들이 신규 마약류 사용자 층으로 편입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10~20대의 마약류 사범이 전체의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2013년 마약류 사범에서 10~20대는 전체의 10.9%를 차지했다. 그러나 2017년에는 15.8%로 증가했고, 2022년에는 34.2%를 차지했다.)

통계적 수치 못지않게 마약 관련 환경적 변화도 그 위험도가 높아졌다. 유흥업소나 특정 공간 중심으로 마약 거래와 투약이 이루어지던 과거와는 달리, 지금은 누구나 쉽게 마약을 구할 수 있게 되었다. 2010년대 초부터 인터넷과 휴대폰을 통한 비대면 거래가 이루어졌고, 요즘은 SNS나 다크웹을 통해서 거래를 성사한 후 일명 ‘던지기’ 수법을 통해서 마약을 주고받는다. 마약소매상도 많아졌고 개인구매자도 많아졌다. 30분에서 1시간이면 마약을 구할 수 있는 것이 2023년 우리나라의 마약 현실이다.

 

 

청소년 마약류 예방교육의 필요성

심각한 청소년 마약 상황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여러 가지 전문가들의 제언이 있지만, 가장 우선되는 것은 ‘마약류’ 관련하여 실효성 있는 예방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펜타닐 패치나 ADHD 치료제 등이 마약류에 포함되는 약품인 것을 모르는 경우가 많았고, 위험성에 대한 인지 없이 투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속적으로 오남용 문제가 제기되는 다이어트약의 경우에도 이와 비슷하다. ‘나비약’과 같은 여러 식욕억제제는 마약류에 포함되는 향정신성의약품이지만, 많은 이들이 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과도하게 복용하거나 개인 간의 판매를 진행하고 있다. 2022년에는 청소년 63명이 마약류 지정 식욕억제제를 투약 및 판매한 혐의로 적발되기도 했는데, 이들 역시 자신들의 취급한 다이어트약이 마약류에 해당하는 것임을 알지 못했다.

디에타민정 (일명 '나비약') [출처=약학정보원]

마약류에 관한 실제적인 교육을 진행한다는 것에 관하여, 부정적인 의견들도 없지는 않다. 마약류를 알지 못하던 청소년들이 도리어 인지하게 되고 관심을 갖게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것이다. 일리 있는 의견이지만 우리 사회에는 이미 마약에 관한 다양한 정보들이 언론과 매체를 통해 유통되고 있고, 심지어 SNS를 통해서 1시간이면 마약을 구매할 수 있는 상황이다. 마약류에 대한 실상을 음지에 묻어두고, 유명인에 대한 처벌을 대대적으로 드러내어 경각심을 일깨우는 수준의 방식으로는 풀어가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병원과 약국을 통해 구할 수 있는 향정신성의약품을 포함하여 우리의 실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마약류에 관한 구체적 교육이 더 필요해 보인다. 다행히 교육부에서도 이러한 점을 인지하고,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의 약물중독 예방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약 14만 명 정도인 학교 밖 청소년에 대한 특별한 관심도 필요하다. 학교 밖 청소년은 전체 학령인구의 3% 정도 되지만, 소년범의 약 40% 정도를 차지할 만큼 상대적으로 범죄에 노출되는 비율이 높다. 교육부에서도 학교밖 청소년지원센터 등을 통해서 학교 밖 청소년에 대한 마약 예방교육을 강화하기로 했지만, 행정시스템 안에서 다 아우르기 어려운 학교 밖 청소년의 특성상 지역사회가 함께 이 일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성이 있다. 특별히 교회도 이 일에 함께할 수 있기를 바란다. 많은 교회에서 운영하는 청소년 프로그램에서, 그리고 할 수 있다면 특별히 학교 밖, 가정 밖 청소년들을 위한 사역에서 마약류에 대한 교육이 적절히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청소년을 환대하는 교회

마약류 의약품을 먹으며 공부하는 아이들, 마약류 의약품을 먹으며 다이어트를 하는 아이들. 실력과 외모가 제1의 평가기준으로 여겨지는 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발버둥이다. 교회는 이를 넘어설 수 있을까? 생존의 압박으로부터, 사회 안에서 자기 존재의 자리를 찾고 이를 지켜내야 한다는 압박으로부터 우리의 자녀들을 지켜낼 수 있을까?

우리에겐 신학자로 잘 알려져 있지만, 감명 깊은 설교자로도 유명했던 폴 틸리히(Paul Tillich)의 말이다.


"You are accepted."
"당신은 받아들여졌습니다."


실력이나 외모와 관계없이, 재산이나 사회적 지위와 관계없이, 타인의 인정과 평가와 관계없이,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와 관계없이, 하나님은 우리를 받아들이시고 우리와 관계하시는 분이다. 그리고 그 하나님 안에서 우리는 자신의 존재를 용납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은 “용납될 수 없는데도 용납된 자로서의 자기 자신을 용납하는 용기”이며, “존재의 용기”이다.4

대한민국 청소년이 처한 상황은 참으로 녹록지 않다. 여기저기서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말을 듣곤 하지만, 이들이 처한 입시와 취업의 현실은 그 모든 것을 잊게 할 만큼 강력하다. 허울 좋은 능력주의표 공정사회 속에서, 돈도 지위도 없는 아이들이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은 타인의 눈에 띄는 능력과 외모 밖에 없어 보인다. 그러나 현실이 이렇더라도, 실력을 갈고닦는 것만으로는 결코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할 수 없으며 행복한 현실을 만들어갈 수 없다. 이럴 때일수록 교회는 청소년들이 존재 그 자체로 인정받고 용납되고 받아들여지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경쟁 및 승패와는 다른 방식의 삶이 있다는 것을 알려야 하고, 서로를 인정하고 함께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을 보여주어야 한다. 교회는 이러한 사명을 받고 세상에 보냄받은 공동체이다.

 

사회적 존재로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청소년들에게 교회가 존재의 버팀목이 되어줄 수 있으면 좋겠다. 우리 자신을 받아들이셨고 우리 자녀들과 청소년들을 받아들이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우리 교회도 청소년들을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청소년들이 언제든 쉬어갈 수 있고, 환대받을 수 있고, 흔들림 가운데 찾아올 수 있는 삶의 버팀목 같은 곳이 우리 교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글. 김용준 (문화선교연구원)

 

※ 국내 마약 상황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는 영상 및 도서입니다.

<시사직격> 마약 관련 취재

211203방송 | 펜타닐 패치 관련 이야기 

221118방송 | 2022 대한민국 마약 보고서 

230407방송 | 마약성 다이어트약 오·남용 실태


도서

『중독 인생』 (북콤마, 2019)  |  강철원 외 3인

마약류 투약 경험자 100명에 대한 심층 인터뷰를 바탕으로, 한국에서 마약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현직 기자 4명이 공동으로 저술했다. 마약과 마약 중독자, 이를 바라보는 사회, 치료와 재활의 필요성 등 꼭 필요한 주제들을 현장의 이야기와 함께 다루었다.



1  “세상에 ‘공부 잘하는 약’은 없다, ‘대치동 ADHD 치료제’로 둔갑한 마약,”  [2023.4.13.] 

2  김대규, “청소년 마약류 범죄 사례 연구,” (한성대학교 행정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23), 87-96.

3  “[팩트체크] 청소년 마약 범죄 증가한다는데…얼마나 늘고 있나,” <연합뉴스> [2022.10.27.]

4  폴 틸리히, 『존재의 용기』 (예영커뮤니케이션,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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