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이슈] 경멸로 사랑하라-2024년 소설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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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이 있기까지 얼마나 고독한 시간을 보냈을까. 이 세상의 A급 작가들은 스스로 경멸한다. 하찮은 질투가 아니라, 스스로 깎아내리며 경멸한다. 백석, 정지용, 윤동주, 김수영, 신동엽, 최인훈, 황석영 작가님들은 모두 얼마나 자신을 경멸하며, 절차탁마(切磋琢磨) 했을까.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과 그 환호성에 앞서 시대와 불화하고 자신을 경멸하며 위대한 명작을 남긴 문사(文士)들의 이름을 호명해 본다.
한강의 영상을 보는데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보통 힘들면 안 쓸려고 하지요. 안 쓰면 되잖아. 도망 가려고 하지요. 도망 가면 좋지만,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고요 그대로 있지요. 결국은 곪고 곪고 또 곪아요. 결국은 대결을 해야 하는 거예요. 너무 싫지요. 그래도 대결해야 하는 거예요. 결국은 쓰는 거예요. 『소년이 온다』는 그 후유증에서 벗어나려고 쓴 글....회복을 위해 쓴 글...... 고해성사 하는 거 같네요.”

- 한강, <당신들에게 보내는 나의 편지>

 한강의 작품들은 모두가 무섭게 경멸하고 고통의 후유증 속에서 사랑한 결과 나온 진주알이다. 글을 쓴다는 행위는 경멸의 사랑이 없으면 쓰지 못한다. 스스로 무섭게 경멸해야 한다. 자기 자신이 썩어 문드러지는 외로움 속에서 진주처럼 자색빛 품은 문장이 떠오른다.

크나큰 사랑으로 사랑하고, 크나큰 경멸로 사랑하라!(mit der grossen Liebe lieben, mit der grossen Verachtung lieben!)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독일어 ‘Verachtung’은 경멸, 모멸, 업신여김이라는 뜻이다. 마치 다이아몬드와 같다. 빛나는 다이아몬드가 되려면 깎고 깎고 다듬어야 한다. 다이아몬드는 대상을 질투하거나 증오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을 깎아내는 경멸을 참는다. 크나큰 경멸로 사랑하는 것은 나의 부족과 나의 한계, 나의 좁은 사랑을 경멸하는 태도다. 성숙하려는 자는 ‘크나큰 경멸’의 눈으로 자기 내면을 바라본다. 자신을 역겹게 보고, 극복의 대상으로 본다. 자신을 경멸하는 마음은 자신을 너무도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자기 자신을 경멸하는 사람은, 그러면서도 언제나 경멸하는 자인 자신을 존중한다.
(Wer sich selbst verachtet, achtet sich doch immer noch dabei als Verächter.)

- 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의 저편』 78번

 

자기 자신을 경멸하는 자는 자신을 늘 존중한다. 창조하는 자는 늘 자신을 경멸해야 한다. 자기가 만든 것에 만족하면 안 된다. 경멸해야 더 높은 것을 창조할 수 있다.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학대를 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한강의 작품은 시대와 그 시대에 불화하는 주인공들의 경멸에서 나온 글들이다. 『채식주의자』(2007)에서 주인공 영혜의 아픔은 그녀를 무시한 육식주의 마초주의 남성주의에 대한 경멸, 그 힘에 대항할 수 없는 자신에 대한 경멸에서 비롯된다.  『소년이 온다』(2014)는 죽은 시체들이 시대를 경멸한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동호의 실제 모델은 5.18 때 광주 도청에서 희생당한 문재학 열사다. 살아남은 그 어머니는 얼마나 세상을 경멸했을까. 이 가족을 인터뷰 한 한강은 작가라는 한계에서 얼마나 괴로워 하며 스스로 경멸했을까. 이 소설은 유가족과 한강이 겪은 곪디 곪은 경멸의 아픔을 풀어낸 이야기다. 『작별하지 않는다』(2021)은 4.3을 주제로 하지만, 주인공과 작가 모두가 경멸의 고통을 체험한다. 식사를 제대로 할 수 없는 경멸, 반대로 너무도 사랑하기 때문이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너무도 사랑하기 때문에, 광주를 비롯하여 지구에 사는 사람들을 너무도 크나큰 사랑으로 크나큰 경멸로 사랑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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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주인동 동호의 실제 모델인 고(故) 문재학 님과 어머니 김길자 님 (사진출처: 오마이뉴스)

글은 몸으로 쓰는 매체다. 니체는 피로 쓰라고 했고, 윤동주는 문장 하나 만드는 데 1년이 걸린다고 했고, 김수영은 온몸으로 글을 쓰라고 했다. 그야말로 '신체적 글쓰기'다. 글뿐이랴. 성악가 조수미는 경멸을 자기학대로 표현한다. 공연을 마치면 화려한 리셉션이 있곤 하는데, 조수미은는 곧바로 숙소에 돌아와, 발성이 어땠는지, 어느 부분에서 실수했는지, 반성한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감기를 조심한다고 한다. 사람들 많은 곳, 샤워하고 난 뒤 몸을 잘 간수한다고 한다. 그 반성 행위를 조수미는 ‘자기학대’라고 인터뷰 때 규정했다.

노벨문학상을 받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난 빛나는 이름을 호명해 본다. 도스토옙스키(1821~1881), 톨스토이(1828~1910), 조셉 콘래드(1857~1924), 마르셀 프루스트(1871~1922), 루쉰(1881~1936), 버지니아 울프(1882~1941), 제임스 조이스(1882~1941), 프란츠 카프카(1883~1924), D.H. 로런스(1885~1930),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1899~1986). 엔도 슈사쿠(1923~1996), 박경리(1926~2008), 밀란 쿤데라(1929~2023) 등이 떠오른다. 특히 김석범, 황석영, 현기영,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름이 떠오른다. 이 시대의 길을 보여주는 많은 문호들께 위로와 감사를 보낸다. 기쁜 소식을 듣고 이 지구 어딘가에서 스스로 자신을 경멸하는 작가가 있다면, 그것은 거대한 존재로 성장하는 기회가 되리라. 스스로 경멸하며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의 일에 몰두하는 이들에게, 희망이나 구원은 마른 벼락처럼 느닷없이 쏟아진다.


글. 김응교 교수(숙명여자대학교 기초교양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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