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나는 소프트 파워Soft Power라는 개념을 접하게 되었는데, 이 단어만으로도 많은 내용이 머릿속에 즉각적으로 떠올랐다. 소프트 파워는 명백하게 하드 파워Hard Power와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개념이다. 우리가 이 간단한 개념을 이해하게 되면 많은 것들이 함께 이해될 것이다. 이것은 당신이 항상 누군가에게 공격적으로 반응하는 것처럼 느끼는 이유이고, 당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이 있으면 그 문화적 흐름에 대한 혐오감을 느끼는 이유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두 개념의 전형인 한국들Koreas을 보자. 북한은 세계의 모든 나라를 겨냥하는 핵무기를 갖고 있으며, 누군가 자신들을 들춰내는 것을 막고자 손가락을 핵무기 발사 버튼 위에 올려놓고 있다. 이것이 바로 하드 파워로, 야구 배트를 들고 있는 커다란 덩치의 불량배와 같은 것이다. 반대로, 남한은 현재 수많은 혁신적인 음악 밴드들로 음악계를 강타한 나라이다. K-POP은 미국이라는 거대한 엔터테인먼트를 잠식해오고 있다. 이처럼 소프트 파워는 하드 파워보다 더 잠재적인 힘이다.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하드 파워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가질 수도 있다.
지적인 소프트 파워를 가진 한국은 팬들이 원하고 갈망하는 것을 계속 공급해주지만, 동시에 팬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능력 또한 스스로 키우고 있다. 한국의 소프트 파워는 북한의 핵처럼 우리에게 노골적으로 다가오지는 않지만, 느리더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큰 영향력을 갖게 된다. 이러한 소프트 파워가 매우 중요한 이유는, 서구에서는 하드 파워보다 소프트 파워의 영향력에 대한 위험성이 더 크기 때문이다.
소프트 파워와 미디어의 영향력
예를 들어, 창세기 3장을 보자. 뱀이 하와에게 석궁을 들고 와서 선악과를 먹으라고 협박했는가? 물론 아니다. 사탄은 하와의 마음에 교묘한 거짓말을 슬그머니 불어넣었다. 그는 하와에게 그녀가 한때 확신했던 것들에 대해 의문을 갖게 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그녀는 세계의 자손들을 죽음과 고역으로 몰아넣게 되었다.
매일 소총과 철조망을 마주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우리는 그보다 훨씬 더 음흉한 힘에 직면해 있다. 그것은 바로 “지적인 식민주의Intellectual Colonialism”이다. 식민주의란, 토착민들의 땅에 대한 서구 문화의 침략이다. 간단히 말하면 백인들이 식민지에 들어와서 백인들의 특정한 방식을 토착민들에게 강요하는 것이다.
서구의 기독교인들은 자신도 모르게 지적인 식민주의 기계의 노예가 되었다. 우리는 우리가 지금까지 생각해오던 방식이 틀렸다고 듣고 있다. 미디어는 우리가 그들처럼 행동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성적으로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말한다. (적어도 안전하고 합의된 관계에 있어서 말이다.) 누군가는 그것이 진리라고 느끼기 때문에, 우리가 모든 믿음을 포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문제는 느낌과 감정이 진실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나의 경험을 얘기하자면, 어떤 사람이 나의 유튜브 영상에 댓글을 달았다. 성경에서 가르치지 않는 것을 믿는 기독교인들을 가혹하게 대해서는 안 된다고 말이다. “만일 그들의 믿음이 견고하다면, 그것이 그들에게는 진리일 수 있다.”
이러한 터무니없고 무지한 생각은 기원전 300년에 이미 잘못된 것으로 입증되었다. 어떤 것이 누군가의 감정과 느낌에 따라 진실이 되거나 동시에 거짓이 될 수는 없다. (겨울은 화창해야 하고 23도 정도의 기온을 가져야 한다고 내가 아무리 강하게 느끼더라도, 현실에서는 눈이 가득히 내릴 것이다.)
미디어의 영향력에 굴복하지 마라.
성경에서 또 다른 하드 파워 이야기를 살펴보고, 이와 함께 소프트 파워로 인해 우리가 굴복하게 되는 방식도 살펴보자.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은 강력한 힘으로 이스라엘 자손들을 바벨론의 포로로 끌고 왔는데, 이곳에서 느부갓네살은 죽음의 공포에 떨고 있는 이스라엘 포로들을 자신의 거대한 우상 앞에 무릎꿇리고 경배하도록 했다. 경비병들은 거대한 우상에게 무릎 꿇지 않는 사람들을 색출해냈다. 만약 당신이 주일학교에 가본 적이 있다면, 사드락, 메삭 그리고 아벳느고에 대해 들었을 것이다. 알다시피 이들은 느부갓네살 우상에 절하지 않았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당시에 느부갓네살 우상에 절하고 복종하라는 현실적이고 물리적인 힘에 직면했었다.
오늘날 우리는 이단의 모든 성적 유혹을 받아들이고 우리의 상상이 불러일으킬 수 있는 모든 성적 지향을 긍정하도록 압박받고 있다. 이런 압박은 매력적인 시트콤과 눈에 띄는 가사의 형태로 자주 나타난다. 미디어의 영향력은 너무나 강력해서 미디어 속 메시지나 행동에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은 독실하게 보일 뿐 아니라 고상한 척하는 사람으로 보이게 된다. 우리는 의를 추구하는 것이 단순히 이질적이고 어색한 것이 아니라 모욕적이고 바보 같은 것이 되어버린 새로운 시대를 만나게 되었다. 과거에 내가 혼전순결을 지킨다고 했다면 사람들은 나의 절제력에 박수를 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내가 성관계에 대한 좋은 욕망을 억누르고 있고, 도리어 내가 잘못되고 있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이렇게 보이지 않는 강한 압박과 미디어의 영향력이 마법처럼 서양 기독교인들에게 작용한 것 같다. 그것들은 잠재의식에 들어와 있으며, 그리스도의 길을 따르는 것은 항상 인기가 없고 더 어려울 것이다.
<보이 이레이즈드Boy Erased>라는 영화를 예로 들어보자. 이 영화의 주제는 다음과 같다. 당신의 성적 충동이 당신 삶의 초석인지, 아니면 당신의 종교가 당신 삶의 초석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만일 어느 하나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다른 하나는 포기하는 것이다. 둘 중 어느 것이 변화되어야 하는 것인지 생각해보기를 바란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우리의 발전된 문화를 따라잡으실 만큼 “진보적”이지는 않다.)
여러 도전 가운데에서 희망을 찾는 것
한 줄기 희망을 발견하기 위해, 예수를 생각해보자. 요한복음 14장 6절은 예수께서 진리임을 말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그저 일시적이고 진부한 이치를 말하지 않는다. 그는 의롭고, 바르고, 정향되고, 믿을 가치가 있는 모든 것의 화신이다. 그는 실상을 정의내린다.
예수께서 지속해서 우리에게 주의하라고 경고하신 것은, 본질적으로 소프트 파워이다. 사탄과 싸우는 방법에 대해 말씀하실 때, 그는 퇴마를 위한 어떤 신비한 종류의 지식을 주신 것이 아니다. 예수께서는 단순하게 자신이 진리를 말하기 때문에 자신의 말을 들으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거짓말은 사탄의 모국어이기 때문에, 사탄의 말을 주의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에베소서 6장에서, 바울은 하드 파워와 소프트 파워를 꽤 명백하게 이분법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하드 파워),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소프트 파워)”(엡 6:12)
나는 성경이 소프트 파워와 투쟁하는 것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주는 데에 많은 분량을 할애한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소프트 파워를 파악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전쟁, 아동 노예 착취, 배우자 학대와 같은 것들은 세상의 악으로 지목할 수 있고 우리가 분별하기 쉽다. 그러나 우리 마음속의 탐욕, 방황하는 성적 욕구, 자기 숭배와 같은 것들은 분별하기 쉽지 않다. 이러한 소프트 파워들이 미디어의 영향력을 매우 교활하게 만든다. 팀 켈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신은 당신이 언제 간음을 저지르는지 알 수 있다. 당신은 성관계를 갖지 않고 멈춰서서 다음과 같이 외칠 것이다. ‘잠깐! 당신은 나의 배우자가 아니다!’ 그러나 당신 마음속의 욕심과 교만은 인식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이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고 우리 자신을 속이기 때문이다.”
미디어 영향력에 관한 조언들
우리는 미국의 소프트 파워에 주의해야 한다. 어떤 형태의 미디어든 생각의 스위치를 꺼놓은 상태에서 맹목적으로 받아들이지 말라. 모든 넷플릭스 프로그램이 가벼운 성관계가 허용될 뿐 아니라 필요하다고 말한다고 해서, 간음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이 바뀐 것은 아니다.
미디어의 영향력과 관련해서 당신은 분별력을 항상 유지해야 한다. 매력적인 문화적 흐름에 빠져드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다. 세상 곳곳에 있는 소프트 파워를 인식해야 한다. 미디어의 영향력과 압박 같은 요소들을 항상 주의하라.
진리를 붙들고 지혜롭게 생각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쉽거나 매력적인 길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진리 그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으려 애쓰고 그의 인격을 닮으려고 노력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그분이 다시 오셔서 모든 거짓을 드러내시고, 참되고 진실한 것을 나타내실 것이다.
Ethan Renoe
Ethan Renoe는 지금까지 7권의 책을 저술했고, 6개 대륙에 거주했다.
그는 무디 성경 연구소(Moody Bible Institute)를 졸업하고, 현재는 덴버 신학교(Denver Seminary)를 다니고 있다.
Churchleaders.com에 게시된 "Media Influence: How Hollywood Has Hijacked Our Minds"를
문화선교연구원에서 번역하여 한국교회와 공유합니다.
(번역: 이광명)
최근 나는 소프트 파워Soft Power라는 개념을 접하게 되었는데, 이 단어만으로도 많은 내용이 머릿속에 즉각적으로 떠올랐다. 소프트 파워는 명백하게 하드 파워Hard Power와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개념이다. 우리가 이 간단한 개념을 이해하게 되면 많은 것들이 함께 이해될 것이다. 이것은 당신이 항상 누군가에게 공격적으로 반응하는 것처럼 느끼는 이유이고, 당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이 있으면 그 문화적 흐름에 대한 혐오감을 느끼는 이유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두 개념의 전형인 한국들Koreas을 보자. 북한은 세계의 모든 나라를 겨냥하는 핵무기를 갖고 있으며, 누군가 자신들을 들춰내는 것을 막고자 손가락을 핵무기 발사 버튼 위에 올려놓고 있다. 이것이 바로 하드 파워로, 야구 배트를 들고 있는 커다란 덩치의 불량배와 같은 것이다. 반대로, 남한은 현재 수많은 혁신적인 음악 밴드들로 음악계를 강타한 나라이다. K-POP은 미국이라는 거대한 엔터테인먼트를 잠식해오고 있다. 이처럼 소프트 파워는 하드 파워보다 더 잠재적인 힘이다.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하드 파워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가질 수도 있다.
지적인 소프트 파워를 가진 한국은 팬들이 원하고 갈망하는 것을 계속 공급해주지만, 동시에 팬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능력 또한 스스로 키우고 있다. 한국의 소프트 파워는 북한의 핵처럼 우리에게 노골적으로 다가오지는 않지만, 느리더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큰 영향력을 갖게 된다. 이러한 소프트 파워가 매우 중요한 이유는, 서구에서는 하드 파워보다 소프트 파워의 영향력에 대한 위험성이 더 크기 때문이다.
소프트 파워와 미디어의 영향력
예를 들어, 창세기 3장을 보자. 뱀이 하와에게 석궁을 들고 와서 선악과를 먹으라고 협박했는가? 물론 아니다. 사탄은 하와의 마음에 교묘한 거짓말을 슬그머니 불어넣었다. 그는 하와에게 그녀가 한때 확신했던 것들에 대해 의문을 갖게 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그녀는 세계의 자손들을 죽음과 고역으로 몰아넣게 되었다.
매일 소총과 철조망을 마주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우리는 그보다 훨씬 더 음흉한 힘에 직면해 있다. 그것은 바로 “지적인 식민주의Intellectual Colonialism”이다. 식민주의란, 토착민들의 땅에 대한 서구 문화의 침략이다. 간단히 말하면 백인들이 식민지에 들어와서 백인들의 특정한 방식을 토착민들에게 강요하는 것이다.
서구의 기독교인들은 자신도 모르게 지적인 식민주의 기계의 노예가 되었다. 우리는 우리가 지금까지 생각해오던 방식이 틀렸다고 듣고 있다. 미디어는 우리가 그들처럼 행동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성적으로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말한다. (적어도 안전하고 합의된 관계에 있어서 말이다.) 누군가는 그것이 진리라고 느끼기 때문에, 우리가 모든 믿음을 포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문제는 느낌과 감정이 진실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나의 경험을 얘기하자면, 어떤 사람이 나의 유튜브 영상에 댓글을 달았다. 성경에서 가르치지 않는 것을 믿는 기독교인들을 가혹하게 대해서는 안 된다고 말이다. “만일 그들의 믿음이 견고하다면, 그것이 그들에게는 진리일 수 있다.”
이러한 터무니없고 무지한 생각은 기원전 300년에 이미 잘못된 것으로 입증되었다. 어떤 것이 누군가의 감정과 느낌에 따라 진실이 되거나 동시에 거짓이 될 수는 없다. (겨울은 화창해야 하고 23도 정도의 기온을 가져야 한다고 내가 아무리 강하게 느끼더라도, 현실에서는 눈이 가득히 내릴 것이다.)
미디어의 영향력에 굴복하지 마라.
성경에서 또 다른 하드 파워 이야기를 살펴보고, 이와 함께 소프트 파워로 인해 우리가 굴복하게 되는 방식도 살펴보자.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은 강력한 힘으로 이스라엘 자손들을 바벨론의 포로로 끌고 왔는데, 이곳에서 느부갓네살은 죽음의 공포에 떨고 있는 이스라엘 포로들을 자신의 거대한 우상 앞에 무릎꿇리고 경배하도록 했다. 경비병들은 거대한 우상에게 무릎 꿇지 않는 사람들을 색출해냈다. 만약 당신이 주일학교에 가본 적이 있다면, 사드락, 메삭 그리고 아벳느고에 대해 들었을 것이다. 알다시피 이들은 느부갓네살 우상에 절하지 않았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당시에 느부갓네살 우상에 절하고 복종하라는 현실적이고 물리적인 힘에 직면했었다.
오늘날 우리는 이단의 모든 성적 유혹을 받아들이고 우리의 상상이 불러일으킬 수 있는 모든 성적 지향을 긍정하도록 압박받고 있다. 이런 압박은 매력적인 시트콤과 눈에 띄는 가사의 형태로 자주 나타난다. 미디어의 영향력은 너무나 강력해서 미디어 속 메시지나 행동에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은 독실하게 보일 뿐 아니라 고상한 척하는 사람으로 보이게 된다. 우리는 의를 추구하는 것이 단순히 이질적이고 어색한 것이 아니라 모욕적이고 바보 같은 것이 되어버린 새로운 시대를 만나게 되었다. 과거에 내가 혼전순결을 지킨다고 했다면 사람들은 나의 절제력에 박수를 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내가 성관계에 대한 좋은 욕망을 억누르고 있고, 도리어 내가 잘못되고 있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이렇게 보이지 않는 강한 압박과 미디어의 영향력이 마법처럼 서양 기독교인들에게 작용한 것 같다. 그것들은 잠재의식에 들어와 있으며, 그리스도의 길을 따르는 것은 항상 인기가 없고 더 어려울 것이다.
<보이 이레이즈드Boy Erased>라는 영화를 예로 들어보자. 이 영화의 주제는 다음과 같다. 당신의 성적 충동이 당신 삶의 초석인지, 아니면 당신의 종교가 당신 삶의 초석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만일 어느 하나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다른 하나는 포기하는 것이다. 둘 중 어느 것이 변화되어야 하는 것인지 생각해보기를 바란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우리의 발전된 문화를 따라잡으실 만큼 “진보적”이지는 않다.)
여러 도전 가운데에서 희망을 찾는 것
한 줄기 희망을 발견하기 위해, 예수를 생각해보자. 요한복음 14장 6절은 예수께서 진리임을 말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그저 일시적이고 진부한 이치를 말하지 않는다. 그는 의롭고, 바르고, 정향되고, 믿을 가치가 있는 모든 것의 화신이다. 그는 실상을 정의내린다.
예수께서 지속해서 우리에게 주의하라고 경고하신 것은, 본질적으로 소프트 파워이다. 사탄과 싸우는 방법에 대해 말씀하실 때, 그는 퇴마를 위한 어떤 신비한 종류의 지식을 주신 것이 아니다. 예수께서는 단순하게 자신이 진리를 말하기 때문에 자신의 말을 들으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거짓말은 사탄의 모국어이기 때문에, 사탄의 말을 주의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에베소서 6장에서, 바울은 하드 파워와 소프트 파워를 꽤 명백하게 이분법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하드 파워),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소프트 파워)”(엡 6:12)
나는 성경이 소프트 파워와 투쟁하는 것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주는 데에 많은 분량을 할애한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소프트 파워를 파악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전쟁, 아동 노예 착취, 배우자 학대와 같은 것들은 세상의 악으로 지목할 수 있고 우리가 분별하기 쉽다. 그러나 우리 마음속의 탐욕, 방황하는 성적 욕구, 자기 숭배와 같은 것들은 분별하기 쉽지 않다. 이러한 소프트 파워들이 미디어의 영향력을 매우 교활하게 만든다. 팀 켈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신은 당신이 언제 간음을 저지르는지 알 수 있다. 당신은 성관계를 갖지 않고 멈춰서서 다음과 같이 외칠 것이다. ‘잠깐! 당신은 나의 배우자가 아니다!’ 그러나 당신 마음속의 욕심과 교만은 인식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이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고 우리 자신을 속이기 때문이다.”
미디어 영향력에 관한 조언들
우리는 미국의 소프트 파워에 주의해야 한다. 어떤 형태의 미디어든 생각의 스위치를 꺼놓은 상태에서 맹목적으로 받아들이지 말라. 모든 넷플릭스 프로그램이 가벼운 성관계가 허용될 뿐 아니라 필요하다고 말한다고 해서, 간음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이 바뀐 것은 아니다.
미디어의 영향력과 관련해서 당신은 분별력을 항상 유지해야 한다. 매력적인 문화적 흐름에 빠져드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다. 세상 곳곳에 있는 소프트 파워를 인식해야 한다. 미디어의 영향력과 압박 같은 요소들을 항상 주의하라.
진리를 붙들고 지혜롭게 생각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쉽거나 매력적인 길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진리 그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으려 애쓰고 그의 인격을 닮으려고 노력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그분이 다시 오셔서 모든 거짓을 드러내시고, 참되고 진실한 것을 나타내실 것이다.
Churchleaders.com에 게시된 "Media Influence: How Hollywood Has Hijacked Our Minds"를
문화선교연구원에서 번역하여 한국교회와 공유합니다.
(번역: 이광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