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이 시대 청년이 원하는 커뮤니티는?

2026-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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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한 동력이 아니면, 학교 동아리를 1년 이상 지도하는 것은 힘들다. 동아리 지도교수를 하면서 지켜보니, 유지하기도 어렵고 모이기도 어려우니 매번 새로 생겼다 사라지고 없어지는 것이 요즘 다반사다. 학생들이 무슨 일이 그리 바쁜지 과외 활동이라도 하려면 꽤 오래 전에 공지를 하고 시간을 맞춰야 하고, 그나마도 모두 모이기는 힘들다. 교회학교 부장님들 중에도 젊은 교사들과 회의하기가 어렵다고 하소연 하는 이들이 많다.

그들은 정말 바쁜가? 실제로 수업 시간에 물으면 아르바이트나 근로활동을 하는 친구들이 반 이상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수업을 마치면 곧바로 해야 할 일들이 많고, 과제나 학점을 관리하려는 열의를 가진 이들이 많아서, 시간에 매우 인색하다. 무엇보다 이들과 동선이 전혀 달라서 이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알기 어렵다. 가끔 성수동에 나가 둘러보지만, 도대체 어디서 무엇을 먹어야 할지부터 어렵다. 그들이 원하는 만남이란 어떤 것일까?



요즘 청년들이 모이는 곳

3040세대라 하든, MZ이라 하든, 하여간 그들의 몸짓과 언어를 이해하고자 하는 열망이 단순 호기심인지, 아니면 그들을 동원하고 싶은 욕망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그들에게 다가가서 뭔가 새로운 일을 하도록 돕고 지원하고 싶은 열망인지 모를 관심을 가진 지 오래됐다. 그래서 ‘청년신학’을 구축하기 위한 신학적 작업도 시도해봤다. 청년의 눈으로 세상을, 교회를, 성서를 바라보자는 제안이기도 했고. 


우선 청년들의 정치경제학적 위치에 주목하고, 강요되는 불평등한 조건들을 자각해야 한다고 설득하며, 자신들의 공론장을 스스로 구축하기 위한 전략이 필요하다는 제안, 그리고 여기에 교회의 적극적인 도움이 요청된다는 주장을 한다. 그런데 청년들은 이런 제안이 무색하게도, 자신들의 정치사회학적 지위에 대한 관심이 없고, 현재의 삶에 적응인지 순응인지 큰 불만족 없이 지낸다. 고급 커피숍도 가고, 해외여행도 가며 나름대로 잘 살아가고 있다. 

더 놀라운 것은, 청년의 정치적 성향이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남성과 여성의 차이가 매우 크고, 한쪽은 거의 극우적 성향을 보인다는 조사 결과들이다. 세계적인 추세로 청년들이 보수화되는 이유는, 소위 ‘PC 정치’의 위선적인 구호에 대한 실망감, 미래에 대한 불안, 연대의 동력 상실 등이라고 한다. 생존도 버거운데 자꾸 싸우라고 저항하라고 떠드는 꼰대 지식인과 정치인들의 잔소리에 지쳐버렸다는 푸념도 있다. 


이들이 몰리는 곳은, 새로운 문화와 밈이 충만한 곳, 그리고 최고의 관심사인 돈이 있는 곳, 요즘 주식 안 하는 청년은 거의 없다고 한다. 또 이들이 몰리는 곳은 피트니스, 등산, 서핑, 독서, 러닝, 게임, 와인 등 취미나 관심을 즐기거나 발전시킬 클럽이나 사회 동아리에 몰린단다. 자신들을 향한 사회적 불평등 구조를 바꾸는 일에 에너지를 쓰기보다 현재 자신들의 관심사를 즐기고, 가용한 자산만을 가용한 범위에서 활용하고자 한다. 

이들이 가고 싶어 하고 즐기고 싶어 하는 콘텐츠를 보면, 이들이 왜 교회를 떠나는지 알 것 같다. 최근 <불교박람회>가 대박을 쳤다는데, 2025년에는 30만 명의 인원이 다녀갔고, 그중 청년 세대가 70%였으며, 올해는 유료 사전예약자가 6만 명이 넘었다는 기사와 함께 테크노 댄스, 화려한 조명, 젊은 취향의 게임과 액티비티를 제공하는 현장 스케치 영상을 보니, 사실 적잖이 놀랐다. 산 속에 있던 사찰이 강남 한 복판에서 저렇게 할 수 있다고???

박람회에 방문한 모든 이들이 불교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보다는 굿즈를 구하러 중앙박물관을 방문하는 이들이 많다고 하는데, 밈처럼, 유행처럼 즐겁고 유쾌하며 인스타그램에 인증 사진 적당히 올릴 만한 화제성 있는 곳에 가려는 청년 세대의 문화적 특성이라고 분석하면 너무 고리타분한 것일까? 생각해 보니, 요즘 소위 뜬다는 교회, 청년들이 많다는 교회를 특성을 보면 그리 틀린 말도 아닐 것이다. 위로, 힐링, 사운드, 조명 등...


최근 교회나 성당의 예배에 참석하고 신앙을 찾는 청년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국내외의 보도가 있었다. 어떤 학자는 이를 ‘조용한 부흥(Quiet Revival)’이라고 표현했는데, 사회적 임팩트가 있거나 대세의 전환은 아니라는 의미다. 하지만 불안한 미래와 생존의 위협에서 벗어나 안식과 안전을 제공하고, 그러면서도 자신들의 감각적인 취향과 트렌드에 영원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종교가 유목민의 피곤함을 잠시 해소할 수 있는 임시 거주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두 개의 세미나

최근 청년을 다룬 두 개의 세미나에 참석했다. 하나는 장신대 기독교와문화 학과에서 개최한 젊은 남성들의 분노와 정치적 성향을 다루었고, 또 하나는 <도시공동체연구소> ‘청년문화랩’에서 진행한 MZ 세대의 커뮤니티에 대한 도시문화 세미나였다. 전자는 극우적 성향을 보이는 청년 남성들이 왜 분노하고 무엇을 바라는지 이해해 보자는 취지에서 마련되었다. 듣고 보니, 그들이 느끼는 정서적 위축감과 불안감은 사회적 산물이고 그 구조적 원인도 분명했다. 

그들에게 강요한 진보적 의제는 실제로 사회적 소외와 역차별이라는 그 누구도 원하지 않은 결과를 낳았다. 그 누구도 원치 않았기 때문에,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다 보니 젊은 남성들의 분노는 내재적으로 쌓여왔고, 이제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이들이 극우 사이트나 영상물에 접속하는 경로는 자연스럽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곳으로 모이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또 다른 세미나는 요즘 MZ 세대가 선호하는 문화적 트렌드와 활동을 소개했다. <샬로믹데이클럽>이라는 청년 모임을 조직하고, 취향과 기호, 선호와 호기심, 연결과 연대를 매개하는 활동을 통해 새로운 교회 밖 교회를 향하는 김지환 대표는 매우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 주장했다. MZ들이 더 합리적이고 실용적이며 새로운 가능성이 무한한 세대라는 것이다. 전통적인 교회가 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취향‘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한다.

물론 이 주장들을 반박하고 비판할 논리는 얼마든지 있다. 자본의 힘에 순응하며 자신만의 생존과 취향에 매몰되는 것이 정당하지 않다는, 혹은 개인의 취향이나 불안이라는 명분 때문에 공동체적 가치를 중요하게 다루지 못하는 것은 한계라는 식의 비판들은 가능하다. 하지만 이미 ‘아비투스’화 되어 취향조차 ‘자본’이 되는 시대의 희생양들을 일말의 긍휼함으로 바라보는 공감의 시선이 더 필요하다. 



이제 교회를 그들이 모이는 곳으로 만들려는 동원 전략보다 그들이 모이는 곳으로 향하는 선교적 전략이 더 절실하다. 청년들이 원하는 커뮤니티는 개인의 취향, 기호, 불안, 호기심, 생존의 방식이 존중되면서도, 순간적이지만 영원의 흔적을 맛보는 느슨한 공감의 연결 상태, 즉 ‘유목적 개방형 커뮤니티(nomadic open community)’이다. 충격적인 광화문 부활절 퍼포먼스를 보면서, 이미 ‘진지적 폐쇄형 모임(occupying closed convention)’이 된 교회가 ‘청년을 위한 교회’를 넘어 ‘청년의 교회’ 될 수 있을지 자문하게 되었다. 유일한 해답은,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성석환 교수 (장신대, 도시공동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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