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적 교회](번역) 대림절 시기, 긍휼함 회복하기 "교회를 향한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라는 소명" (By Daniel Geraci)

2024-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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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휼함 회복하기’ - 교회를 향한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라는 소명

이 사회의 사람들은 누구를 선한 사마리아인으로 생각하고 있을까? 교회일까? 혹은 정부일까? 역사적으로 교회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하고 섬김으로 긍휼을 구현해 왔다. 긍휼은 단순한 동정심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한 개인의 고통에 함께 동참할 줄 알고, 그 고통을 실제적으로 완화하라는 하나님의 부름이다. 예수님께서 직접 긍휼의 본보기가 되어 우리에게 영감을 주셨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인간의 삶과 죽음을 하셨다. 고통을 통해 우리에게 희망을 주심으로써 긍휼의 진정한 의미를 보여주신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긍휼이라는 것은, 종종 “공감하고 걱정하는 연민 정도”로만 정의되며 성경적 개념보다 훨씬 약화되어 있다. 과거 교회는 고난 속에 있는, 집을 잃어버린,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상실에 처해있는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도 했다. 하지만 요즘은 전혀 그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 교회가 아무리 선한 의도를 가진다 하더라도, 이제는 물질적인 지원만으로는 사람들의 삶을 진정으로 회복시키는 데 실패하게 된 것이다. 한때 도시의 선한 사마리아인이라 여겨졌던 교회는, 현재 도움의 손길을 그냥 지나쳐버린 제사장 혹은 레위인이 될 위험에 처했다.

오늘날 사회복지 시스템을 살펴보면, 정부가 (복지에 필요한 생활기반시설 등)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종종 훌륭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본다. 네트워크화된 시스템을 통해 정부는 자연재해와 같은 위기에 처했을 때,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행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많은 교회는 대규모 비상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필요한 자원이나 준비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주변 이웃들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비상상황에 대처하기를 어려워하거나, 혹은 아예 무관심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열심히 참여하는 교회가 있다 하더라도, 심각한 위기나 자연재해 앞에서, 너무나 과도하게 부담을 안게 되어 목회자와 직원들이 탈진 상태에 직면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점점 긍휼의 사역에서 벗어나 그 에너지를 다른 곳에 사용하려는 위험에 처하기도 한다.


정부가 제공할 수 없는 것을 제공하는 교회

정부가 재난 구호에서 일부 긴급한 필요를 충족시키는 역할은 인정할 만하다. 그러나 교회만이 제공할 수 있는 도움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교회가 영적으로 준비될 뿐만 아니라, 자연재해나 개인적 위기의 때에 ‘안전한 피난처’로서 감정적·물리적으로 준비되어 있다고 상상해 보자. 자원봉사자들이 단순히 비상대응을 위해서만 훈련된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며 삶을 진정으로 변화시키는 사역 방식으로 훈련되었다고 상상해 보자. 이러한 교회는 이 시대 선한 사마리아인의 모습을 구현할 수 있으며, 위기에 처한 이웃들에게 정부는 제공할 수 없는 무언가를 줄 수 있게 된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과 희망을 상기시켜 주는 것이다.

집이 없어 노숙을 하고 있는 사람을 마지막으로 본 때를 떠올려 보자. 그 사람이 단숨에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되었을까? 교회가 개입하여 희망을 줄 수 있었던 중요한 전환점들이 충분히 있었는데 그런 상황을 놓치게 된 것은 아닐까? 물론, 개인이 겪는 모든 고통에 교회가 책임이 있다는 말은 아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의해 잊히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을 인정하자는 말이다. 아마도 지금껏 교회는,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사람들에게는 정부가 필요하다고만 맡겨두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교회는 길을 잃은 세상에 대해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라는 사명을 오랫동안 맡아왔다. 이는 결코 정부가 대신할 수 없는 역할들이다. 만약 교회가 한 발 물러선다면, 누가 사람들에게 참된 희망과 구원의 근원이 예수님께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줄 수 있을까? 종종 이러한 후퇴는 교회의 선한 영향력을 무디게 만들고, 깨어진 사람들이 희망을 잃고 점점 더 하나님과 멀어지게 만든다. 이제 교회가 긍휼의 소명을 되살리고 위기와 재난 사회 속에서의 역할을 다시 회복해야 할 때이다. 예수님께서 “네 이웃을 사랑하라”라고 명령하신 말씀은 조건적이거나 혹은 부분적인 게 아니다. 그것은 이웃을 위해 나의 삶을 내놓으라는 적극적인 부름이다.

교회가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어주는 것을 회복함으로써, 교회는 정부와 협력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정부 복지 시스템을 대체하라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더해 감정적·영적 깊이와 지속적인 변화를 더하라는 것이다. 함께 한다면, 우리는 더 깊은 곳까지 다가가며 일시적 지원을 넘어 한 사람의 삶을 회복시키고, 지금껏 물질적 지원만으로 제공할 수 없었던 진정한 희망을 제시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는 교회가 하나님의 주요 전략임을 기억해야 한다. 위기 상황에서 우리가 나서지 않는다면, 누가 그 순간에 하나님의 은혜와 선하심을 전할 수 있단 말인가? 예수님께서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를 위기 상황에서 나누신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믿는다. 모든 고난과 위기 속에서 하나님의 선하심이 시험받기 때문이다. 

보험 회사들이 재난을 ‘하나님의 행위’로 선언하고, 악마가 생존자의 귀에 “하나님은 널 사랑하지 않아” 혹은 “하나님이 사랑이시라면 왜 이런 재난이나 위기를 허락했겠어?”라고 속삭이는 순간. 교회의 역할은 하나님의 증인이 되어 그의 선하심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 대상은 대게 인생에서 가장 끔찍한 날을 겪은 개인이나 가족공동체일 것이다. 모든 도시에서 교회는 긍휼을 실천하는 신뢰할 수 있는 원천으로서의 역할을 회복해야 하며, 반드시 그래야 한다. 예수님처럼 섬기겠다는 다짐을 가지고, 치유와 회복의 이야기에서 진정한 영웅이신 예수님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손과 발이 되어야 한다.

 


Daniel Geraci 소개

Daniel Geraci는 ‘United in Crisis’의 설립자이자 대표이다. 이 단체는 재난이나 위기 속에서 생존한 사람들에게 감정적·영적·물질적 필요를 충족시켜주도록 전 세계 교회가 위기 대응을 위해 연합하고 준비될 수 있도록 훈련하는 기구이다. Geraci는 올해 5월, <United in Crisis: A True Story of God's Miraculous Power Working Through a United Network of Churches> (연합된 교회 네트워크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기적 실화)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Churchleaders.com에 게시된 <Reclaiming Compassion—A Call for the Church To Become the Good Samaritan Once Again> 를
문화선교연구원에서 번역하여 한국교회와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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