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최근에 <Influence Magazine>에 애국심과 교회에 관한 기사를 쓴 적이 있는데, 거기에 몇 가지 생각을 더 추가하고자 한다.
이번 여름 동안 미국의 독립기념일을 축하하면서 나는 많은 교회가 미국, 하나님, 그리고 교회가 예배의 맥락에서 서로 어떻게 어울릴 수 있을지에 대해 논의하는 것을 보았다. 나는 이 국가적인 축일의 시기에 하나님의 나라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우리에게 도전적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애국심과 교회: 통계 및 우려 사항
'LifeWay' 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개신교 교회의 90%가 7월 4일을 기념하기 위해 예배에서 무언가를 했다고 한다.
교회가 어떻게 그리고 왜 이렇게 (기념일에 대해) 큰 규모로 관여하고 있는지 생각해 볼 만한 흥미로운 사실을 보여주는 통계가 있다.
개신교 목회자의 53%가 ‘우리 교회는 때때로 하나님보다 미국을 더 사랑하는 것 같다.’라고 말하고 있다.

동의 53% 비동의 45% 잘 모르겠다 2%
지금, 만약 내가 애국심과 예배가 뒤섞이는 것의 위험성을 지적한다면, 어떤 사람들은 그저 크게 불쾌해할 것이다. 음, 나도 사실 이 통계에 대해서 기분이 몹시 상한다. 그리고 마땅히 이 글을 읽는 당신 역시 그래야만 한다.
목회자의 53%가 때때로 신도들이 하나님보다 미국을 더 사랑한다는 데 동의할 때, 그것은 경종을 울리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내가 글을 쓰도록 만드는 것이다. (목회자의 53%가 때땔 신도들이 하나님보다 미국을 더 사랑하는 데 동의한다는 것은 현 상황에 경종을 울리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내가 글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애국심과 교회: 우상숭배가 진짜 문제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대체하는 것은 모두 우상숭배이며 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사람들에게 예수를 가리키며(가르치며) 우리 삶과 교회, 문화 속에 존재하는 우상숭배를 강조하는 것이 목회자로서 우리의 일이다.
칼빈에 의하면 우리의 마음은 우상을 만드는 공장이라 그것들에 끌린다고 한다.
나는 왜 이 통계가 실제로 우리를 놀라게 할 만한 일이 아닌지 몇 가지 방식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60년 전까지만 해도 교회가 주민센터였고, 목사가 지역사회를 대표했으며, 교회 건물은 마을에서 가장 큰 공공 모임 장소였다. 그리고 이것들이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는 미국 문화의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미국, 하나님, 그리고 교회가 공생관계로 결합했다. 미국은 건국의 아버지들의 의도적인 목적보다는 지역 교회가 미국 문화를 형성하는 다소 소극적인 역할들로 인해 오히려 기독교 국가로 인식되고 있다.”
이것은 나에게 미묘하면서도 매력적인 역사인데, <Influence Magazine>의 전체 기사를 통해 더 자세히 살펴보자. 하나님을 숭배하는 것과 미국을 숭배하는 것을 융합시켜 왔던 것은 바로 이 역사다. 당신의 교회가 미국과 세계의 위대함을 축하하고 노래하는 규칙적인 습관을 가지고 있다면, 창조를 다스리는 하나님의 주권과 창조물로써의 미국의 주권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질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감히?
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 그들은 이러한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내가 이런 글을 올려보면 '어떻게 감히 그런 고민을 할 수가 있어!', '그런 생각은 본 적도 없어.'라는 트윗이 쏟아진다.
정말인가? 있다.(아니, 이런 생각은 분명 존재한다.) 심지어 나만 그런 게 아닌 것 같다.
실제로 "개신교 목회자의 53%가 ‘때로는 우리 신도들이 하나님보다 미국을 더 사랑하는 것 같다.’ 라고 말한다."라고 하니 어떤 이들은 자신들을 걱정스럽게 하는 무언가를(마치 내가 보는 것과 같이) 보고 있는 것 같다.
즉, 나만 눈치채고 걱정하는 게 아닌 것 같다.
신중해야 한다는 것은 신학적으로 고민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보는 역사에 비추어 볼 때 이러한 몇 가지 문제를 앞으로 나아가서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우리나라는 신이 선택한 나라가 아니며 미국인은 신이 선택한 민족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예배에서 표면적이고 일시적인 한 국가에 대해 노래하는 것은 혼란스러울 수 있으며, 중국에서 온 방문객에게 차별적인 메시지를 전하지 않도록 매우 주의해야만 한다. 내 말은 신중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미국을 찬양하는 집회처럼 보이는 예배에 대해 염려하는 사람들에 대해 오히려 지속적으로 기분이 상하는 사람들은 그들 교회의 충성에 대해 걱정하는 53%의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할지도 모른다.
따라서, 우리는 이것에 대해 신학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이 매주 일요일은 기념일이지만(아무리 그날이 기념일일지라도) 예수님과(오직 예수님 한 분과,)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죄를 위해 자유하게 하는(우리를 죄에서 자유하게 하신) 일만을 우리 자리에서 축하해야 한다. 사도행전 4장 12절에 이르기를,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미국은 우리의 구원이 아니다. 아마 당신도 알고 있겠지만,(당신이 아는 것처럼,)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항상 그것을 알고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보다 나라에 희망이 더 있는가?
어떤 국가에 존재하는 새로운 나라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로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새로운 나라와 새로운 충성을 주셨다. 우리들은 더 이상 이 세상의 시민이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나라의 시민이다. 그의 나라는 그것을 위해 죽을 만큼 가치가 있고, 그의 나라는 그것을 위해 살 만큼 가치가 있다. 그리고 그의 나라는 우리의 완전한 충성을 받을 자격이 있는 유일한 나라다.
나는 애국심이 깊다. 나는 7월 4일에 아이들에게 독립선언서를 읽어주었고, 우리는 그날을 축하하면서 그 의미를 우리 집에서 되새겼다. 만약 당신도 그렇게 했지만 내가 여전히 걱정하는 부분 즉, "나는 미국인인 것이 자랑스럽다."를 예배에 포함시키는 것에 대해 염려하는 것을 보며 기분이 상했다면 나에게 알려주길.
애국심과 교회: 더 높은 소명
마지막으로, 나는 우리가 모두 소명을 가졌다는 것을 격려하고 싶다.
아래는 <Influence Magazine>에서 언급했던 부분이다.
"우리는 왕을 사랑하고 섬기며 하나님의 나라를 대표하라는 부름을 받았다. 그게 우리의 주된 임무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우리의 조국을 축하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충성심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닌 하나님 나라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 "
우리가 어떻게 살고 세상을 보는지에 대해 성경이 말하는 것을 아무도 막을 수 없다. 우리의 지상 시민권은 너무 덧없고 하늘은 너무 영원해서 바울의 에베소서 말씀을 무시할 수 없다.
“몸이 하나요 성령이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에베소서 4:4-6)
우리는 새로운 시민권과 새로운 충성심을 얻었다. 목회자와 지도자로서 우리는 특히 혼란이 심할 때 다른 사람들을 그러한 현실로 불러들여야 한다. 우리가 애국심을 가질 수 없다는 게 아니다. 난 애국자다. 특히 수치가 문제가 될 때 우리는 주의해야 한다. (그러나 수치가 문제가 될 때 우리는 주의해야 한다.)
애국심과 교회에 관해서 말하자면, 사람들은 어떻게 애국심을 갖는지 그리고 그것이 교회와 어떻게 연관되는지에 대해 서로 다른 결론을 내리게 된다. 그리고 나는 내가 원하는 방향과 다르게 행동하는 모든 사람이나 교회에게 동기를 부여하고자 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애국심과 교회를 결합하는 것을) 신중하게 해야 한다는 것에 모두 동의할 수 있는가? 적어도 우리가 (애국심과 교회를 결합하는 것이) 성서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위험 요소들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할 수는 있는가?
위의 통계에 비추어 볼 때, 그것은 꽤 현명한 조치인 것 같다.
글쓴이 Ed Stetzer(홈페이지)
Ed Stetzer박사는 Wheaton College의 교수이자 학장이며 Wheaton College Billy Graham Center의 전무 이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는 교회를 개척하고, 활성화시키고자 노력하였고, 목회사역을 했으며, 6개 대륙에 있는 목회자와 개척교회 들을 훈련시켰으며, 석사 학위 2개와 박사 학위 2개를 받았으며, 수백 권의 아티클들과 12권의 책을 집필했다. 그는 Lausanne North America의 지역 이사이며 Outreach Magazine의 편집장이며 USAToday와 CNN과 같은 뉴스 매거진에 자주 인용되며, 인터뷰를 하며, 기고하고 있다. 그는 매주 170만 명 이상이 성경 이야기를 위해 사용하는 교육과정인 The Gospel Project의 창립 편집자이다. 그의 국영 라디오 쇼인 Ed Stetzer Live는 토요일 Moody Radio와 계열사들을 통해 방송된다. 그는 뉴욕 Calvary 교회의 임시 교단 목사로 재직하고 있으며 Highpoint Church 교회에서 교단 목사로 재직하고 있다.
Churchleaders.com에 게시된 "Patriotism and the Church: Is It Too Much to Ask Churches to Be Careful?"을
문화선교연구원에서 번역하여 한국교회에 공유한다.
(번역자: 심수빈 전도사)
나는 최근에 <Influence Magazine>에 애국심과 교회에 관한 기사를 쓴 적이 있는데, 거기에 몇 가지 생각을 더 추가하고자 한다.
이번 여름 동안 미국의 독립기념일을 축하하면서 나는 많은 교회가 미국, 하나님, 그리고 교회가 예배의 맥락에서 서로 어떻게 어울릴 수 있을지에 대해 논의하는 것을 보았다. 나는 이 국가적인 축일의 시기에 하나님의 나라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우리에게 도전적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애국심과 교회: 통계 및 우려 사항
'LifeWay' 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개신교 교회의 90%가 7월 4일을 기념하기 위해 예배에서 무언가를 했다고 한다.
교회가 어떻게 그리고 왜 이렇게 (기념일에 대해) 큰 규모로 관여하고 있는지 생각해 볼 만한 흥미로운 사실을 보여주는 통계가 있다.
지금, 만약 내가 애국심과 예배가 뒤섞이는 것의 위험성을 지적한다면, 어떤 사람들은 그저 크게 불쾌해할 것이다. 음, 나도 사실 이 통계에 대해서 기분이 몹시 상한다. 그리고 마땅히 이 글을 읽는 당신 역시 그래야만 한다.
목회자의 53%가 때때로 신도들이 하나님보다 미국을 더 사랑한다는 데 동의할 때, 그것은 경종을 울리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내가 글을 쓰도록 만드는 것이다. (목회자의 53%가 때땔 신도들이 하나님보다 미국을 더 사랑하는 데 동의한다는 것은 현 상황에 경종을 울리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내가 글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애국심과 교회: 우상숭배가 진짜 문제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대체하는 것은 모두 우상숭배이며 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사람들에게 예수를 가리키며(가르치며) 우리 삶과 교회, 문화 속에 존재하는 우상숭배를 강조하는 것이 목회자로서 우리의 일이다.
칼빈에 의하면 우리의 마음은 우상을 만드는 공장이라 그것들에 끌린다고 한다.
나는 왜 이 통계가 실제로 우리를 놀라게 할 만한 일이 아닌지 몇 가지 방식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이것은 나에게 미묘하면서도 매력적인 역사인데, <Influence Magazine>의 전체 기사를 통해 더 자세히 살펴보자. 하나님을 숭배하는 것과 미국을 숭배하는 것을 융합시켜 왔던 것은 바로 이 역사다. 당신의 교회가 미국과 세계의 위대함을 축하하고 노래하는 규칙적인 습관을 가지고 있다면, 창조를 다스리는 하나님의 주권과 창조물로써의 미국의 주권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질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감히?
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 그들은 이러한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내가 이런 글을 올려보면 '어떻게 감히 그런 고민을 할 수가 있어!', '그런 생각은 본 적도 없어.'라는 트윗이 쏟아진다.
정말인가? 있다.(아니, 이런 생각은 분명 존재한다.) 심지어 나만 그런 게 아닌 것 같다.
실제로 "개신교 목회자의 53%가 ‘때로는 우리 신도들이 하나님보다 미국을 더 사랑하는 것 같다.’ 라고 말한다."라고 하니 어떤 이들은 자신들을 걱정스럽게 하는 무언가를(마치 내가 보는 것과 같이) 보고 있는 것 같다.
즉, 나만 눈치채고 걱정하는 게 아닌 것 같다.
신중해야 한다는 것은 신학적으로 고민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보는 역사에 비추어 볼 때 이러한 몇 가지 문제를 앞으로 나아가서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우리나라는 신이 선택한 나라가 아니며 미국인은 신이 선택한 민족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예배에서 표면적이고 일시적인 한 국가에 대해 노래하는 것은 혼란스러울 수 있으며, 중국에서 온 방문객에게 차별적인 메시지를 전하지 않도록 매우 주의해야만 한다. 내 말은 신중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미국을 찬양하는 집회처럼 보이는 예배에 대해 염려하는 사람들에 대해 오히려 지속적으로 기분이 상하는 사람들은 그들 교회의 충성에 대해 걱정하는 53%의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할지도 모른다.
따라서, 우리는 이것에 대해 신학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이 매주 일요일은 기념일이지만(아무리 그날이 기념일일지라도) 예수님과(오직 예수님 한 분과,)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죄를 위해 자유하게 하는(우리를 죄에서 자유하게 하신) 일만을 우리 자리에서 축하해야 한다. 사도행전 4장 12절에 이르기를,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미국은 우리의 구원이 아니다. 아마 당신도 알고 있겠지만,(당신이 아는 것처럼,)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항상 그것을 알고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보다 나라에 희망이 더 있는가?
어떤 국가에 존재하는 새로운 나라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로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새로운 나라와 새로운 충성을 주셨다. 우리들은 더 이상 이 세상의 시민이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나라의 시민이다. 그의 나라는 그것을 위해 죽을 만큼 가치가 있고, 그의 나라는 그것을 위해 살 만큼 가치가 있다. 그리고 그의 나라는 우리의 완전한 충성을 받을 자격이 있는 유일한 나라다.
나는 애국심이 깊다. 나는 7월 4일에 아이들에게 독립선언서를 읽어주었고, 우리는 그날을 축하하면서 그 의미를 우리 집에서 되새겼다. 만약 당신도 그렇게 했지만 내가 여전히 걱정하는 부분 즉, "나는 미국인인 것이 자랑스럽다."를 예배에 포함시키는 것에 대해 염려하는 것을 보며 기분이 상했다면 나에게 알려주길.
애국심과 교회: 더 높은 소명
마지막으로, 나는 우리가 모두 소명을 가졌다는 것을 격려하고 싶다.
아래는 <Influence Magazine>에서 언급했던 부분이다.
우리가 어떻게 살고 세상을 보는지에 대해 성경이 말하는 것을 아무도 막을 수 없다. 우리의 지상 시민권은 너무 덧없고 하늘은 너무 영원해서 바울의 에베소서 말씀을 무시할 수 없다.
“몸이 하나요 성령이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에베소서 4:4-6)
우리는 새로운 시민권과 새로운 충성심을 얻었다. 목회자와 지도자로서 우리는 특히 혼란이 심할 때 다른 사람들을 그러한 현실로 불러들여야 한다. 우리가 애국심을 가질 수 없다는 게 아니다. 난 애국자다. 특히 수치가 문제가 될 때 우리는 주의해야 한다. (그러나 수치가 문제가 될 때 우리는 주의해야 한다.)
애국심과 교회에 관해서 말하자면, 사람들은 어떻게 애국심을 갖는지 그리고 그것이 교회와 어떻게 연관되는지에 대해 서로 다른 결론을 내리게 된다. 그리고 나는 내가 원하는 방향과 다르게 행동하는 모든 사람이나 교회에게 동기를 부여하고자 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애국심과 교회를 결합하는 것을) 신중하게 해야 한다는 것에 모두 동의할 수 있는가? 적어도 우리가 (애국심과 교회를 결합하는 것이) 성서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위험 요소들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할 수는 있는가?
위의 통계에 비추어 볼 때, 그것은 꽤 현명한 조치인 것 같다.
글쓴이 Ed Stetzer(홈페이지)
Ed Stetzer박사는 Wheaton College의 교수이자 학장이며 Wheaton College Billy Graham Center의 전무 이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는 교회를 개척하고, 활성화시키고자 노력하였고, 목회사역을 했으며, 6개 대륙에 있는 목회자와 개척교회 들을 훈련시켰으며, 석사 학위 2개와 박사 학위 2개를 받았으며, 수백 권의 아티클들과 12권의 책을 집필했다. 그는 Lausanne North America의 지역 이사이며 Outreach Magazine의 편집장이며 USAToday와 CNN과 같은 뉴스 매거진에 자주 인용되며, 인터뷰를 하며, 기고하고 있다. 그는 매주 170만 명 이상이 성경 이야기를 위해 사용하는 교육과정인 The Gospel Project의 창립 편집자이다. 그의 국영 라디오 쇼인 Ed Stetzer Live는 토요일 Moody Radio와 계열사들을 통해 방송된다. 그는 뉴욕 Calvary 교회의 임시 교단 목사로 재직하고 있으며 Highpoint Church 교회에서 교단 목사로 재직하고 있다.
Churchleaders.com에 게시된 "Patriotism and the Church: Is It Too Much to Ask Churches to Be Careful?"을
문화선교연구원에서 번역하여 한국교회에 공유한다.
(번역자: 심수빈 전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