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회에 가는 것’만이 전부인 적은 없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사람들을 많이 모아 교회 건물을 가득 채우기 위해 열심히 일해라! 그러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는 줄 알겠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를 포함하여) 많은 목회자들이 대부분의 시간과 에너지를 어디에 쏟고 있는지 보면, 아마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최근 페이스북 등 여러 SNS를 보면, 주일의 아침과 저녁, 그리고 주중에 교회가 꽉 찼었던 '좋은 시절'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을 종종 발견한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소규모 교회의 목회 현장에서 더 잘 찾아볼 수 있다. 나 역시 그 그리움은 이해한다. 나도 우울할 정도로 적은 주일예배 출석을 많이 경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좋은 시절’ 사고방식에 3가지의 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옛날 좋았던 시절’은 사실 그리 좋지 않았다. 우리는 선별적인 기억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만약 과거로 다시 돌아간다면, 우리는 가능한 한 빨리 다시 현재의 시점으로 돌아오고 싶어 할 지도 모른다.
둘째, 과거에 대한 갈망은 패배를 대비하는 것이다. 우린 돌아갈 수 없다. 시간 여행은 한 방향과 일정한 속도로 작동한다. 어느 교회 목회자도 결코 과거로 가고 싶어해서는 안 된다. 과거는 기리며, 현재를 살고, 미래를 계획하자.
셋째, 나는 ‘부활’, ‘거듭남, ‘영적 각성’의 증거로서 ‘가득 찬 교회’들에 대한 이야기를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 오히려 교회가 ‘비워지는 것’에 대해 듣고 싶다. 즉, 지역사회로 나가 섬기고, 봉사하며, 복음을 전하는 것 말이다. 그것은 교회 출석이 늘어나는 것보다 더 큰 부흥의 징조이다.
이 시대는 더 큰 대형교회 혹은 꽉 채워진 작은 교회가 필요하지 않다. 우리는 변화된 삶, 가족, 도시, 국가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모두 교회 건물 안에 틀어박혀 있을 때는 이루기 어렵다.
예수님이 강조하신 것을 우리도 강조하자. 복음서를 살펴보면, 예수님께서는 교회에서만 시간을 보냈었는가? 혹은 사람들에게 교회에 가도록 말씀하신 적이 있는가? 아니면 제자들이 그렇게 했는가? 아니다. 사실 예수님과 제자들은 교회에 가는 것을 강조한 적이 없다. 그들은 “교회가 되고” "세상으로 나가는 것 (막 16:15)"을 강조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교회 건물이 가득하기를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눅 10:2).
교회됨의 본질은 교회 ‘건물’을 채우는 ’이 아니라, ‘이웃’을 예수님 사랑의 기쁜 소식으로 가득 채우는 것이다. (한 가지 예로, 그것이 어떠한 모습인지 궁금하다면 우리 교회에서 하는 ‘Share Days’라는3분짜리 사역 영상을 보기를 바란다.) http://newsmallchurch.com/community-service-day-video/
물론 예수님께서는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눅 14:23)고 말씀하셨었다. 그러나 누가복음 14장의 전체 문맥이나 다른 유사한 구절을 제대로 살펴 본다면 예수님의 강조점은 ‘밖으로 나가는 것’에 있지 ‘안으로 데리고 오는 것’에 있지 않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안(in)’은 교회 건물을 가득 채우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것은 ‘의인들의 부활’(눅 14:14)에서 하늘을 가득 채우는 내용이다.
교회됨의 본질은 교회 건물로 모이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물론 교회가 열정적이고 예배하는 신도들과 성실한 구도자로 가득 차 있는 것은 훌륭한 일이다. 하지만 교회 건물을 채우는 것 자체가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교회 건물은 하나님이 세상에 도달하기 위해 사용하시는 ‘도구’이지 그 자체가 ‘목표’는 아니다.
역사상 교회 건물은 가득 찼지만, 오히려 지역 사회는 지옥 같았던 적이 너무 많았다.
모든 교회의 위대한 경험은 두 가지를 지향해야 한다.
-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확대하는 것.
- 말과 행동으로 사랑하고 섬기고 복된 소식을 전할 수 있도록 더 준비된 성도들을 내보내는 것.
아마도 교회의 건강함과 영적 거듭남의 정도는, 우리가 어떻게 교회 건물을 채워가는 지가 아니라 어떻게 교회를 비우는 지로 측정해야 할 것이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사람들을 교회 건물로 채우는 것을 강조하면서 그들을 밖으로 내보내는 것에 어려움을 겪어본 적이 있는가?
칼 베이터스(Karl Vaters)은 네 권의 저자로 거의 40년 동안 목회를 해왔다. 그는 캘리포니아 오렌지 카운티의 건강한 작은 교회인 코너스톤 크리스천 펠로우십(Cornerstone Christian Fellowship)의 목회자이며, 그 곳에서 아내 셸리(Shelley)와 27년 넘게 목회했다. 그의 사명은 작은 교회의 목회자들이 목회하면서 생기는 독특한 장점을 활용하여 잘 이끌어갈 수 있도록 자원을 찾도록 돕는 데에 있다. 칼은 KarlVaters.com에서 작은 교회들의 번영을 돕기 위한 자원을 제작하고, 작은 교회들이 COVID-19 위기와 후유증과 관련된 문제들을 다룰 수 있도록 새로운 자원으로 정기적으로 업데이트되는 S.P.A.R.K. 온라인(S.P.A.K. Online)을 만들었다.
Churchleaders.com에 게시된 "Jesus Never Told Us to Fill Church Buildings"을
문화선교연구원에서 번역하여 한국교회에 공유한다.
(번역자: 이세형 목사)
‘교회에 가는 것’만이 전부인 적은 없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사람들을 많이 모아 교회 건물을 가득 채우기 위해 열심히 일해라! 그러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는 줄 알겠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를 포함하여) 많은 목회자들이 대부분의 시간과 에너지를 어디에 쏟고 있는지 보면, 아마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최근 페이스북 등 여러 SNS를 보면, 주일의 아침과 저녁, 그리고 주중에 교회가 꽉 찼었던 '좋은 시절'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을 종종 발견한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소규모 교회의 목회 현장에서 더 잘 찾아볼 수 있다. 나 역시 그 그리움은 이해한다. 나도 우울할 정도로 적은 주일예배 출석을 많이 경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좋은 시절’ 사고방식에 3가지의 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옛날 좋았던 시절’은 사실 그리 좋지 않았다. 우리는 선별적인 기억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만약 과거로 다시 돌아간다면, 우리는 가능한 한 빨리 다시 현재의 시점으로 돌아오고 싶어 할 지도 모른다.
둘째, 과거에 대한 갈망은 패배를 대비하는 것이다. 우린 돌아갈 수 없다. 시간 여행은 한 방향과 일정한 속도로 작동한다. 어느 교회 목회자도 결코 과거로 가고 싶어해서는 안 된다. 과거는 기리며, 현재를 살고, 미래를 계획하자.
셋째, 나는 ‘부활’, ‘거듭남, ‘영적 각성’의 증거로서 ‘가득 찬 교회’들에 대한 이야기를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 오히려 교회가 ‘비워지는 것’에 대해 듣고 싶다. 즉, 지역사회로 나가 섬기고, 봉사하며, 복음을 전하는 것 말이다. 그것은 교회 출석이 늘어나는 것보다 더 큰 부흥의 징조이다.
이 시대는 더 큰 대형교회 혹은 꽉 채워진 작은 교회가 필요하지 않다. 우리는 변화된 삶, 가족, 도시, 국가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모두 교회 건물 안에 틀어박혀 있을 때는 이루기 어렵다.
예수님이 강조하신 것을 우리도 강조하자. 복음서를 살펴보면, 예수님께서는 교회에서만 시간을 보냈었는가? 혹은 사람들에게 교회에 가도록 말씀하신 적이 있는가? 아니면 제자들이 그렇게 했는가? 아니다. 사실 예수님과 제자들은 교회에 가는 것을 강조한 적이 없다. 그들은 “교회가 되고” "세상으로 나가는 것 (막 16:15)"을 강조했다.
교회됨의 본질은 교회 ‘건물’을 채우는 ’이 아니라, ‘이웃’을 예수님 사랑의 기쁜 소식으로 가득 채우는 것이다. (한 가지 예로, 그것이 어떠한 모습인지 궁금하다면 우리 교회에서 하는 ‘Share Days’라는3분짜리 사역 영상을 보기를 바란다.) http://newsmallchurch.com/community-service-day-video/
물론 예수님께서는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눅 14:23)고 말씀하셨었다. 그러나 누가복음 14장의 전체 문맥이나 다른 유사한 구절을 제대로 살펴 본다면 예수님의 강조점은 ‘밖으로 나가는 것’에 있지 ‘안으로 데리고 오는 것’에 있지 않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안(in)’은 교회 건물을 가득 채우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것은 ‘의인들의 부활’(눅 14:14)에서 하늘을 가득 채우는 내용이다.
교회됨의 본질은 교회 건물로 모이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물론 교회가 열정적이고 예배하는 신도들과 성실한 구도자로 가득 차 있는 것은 훌륭한 일이다. 하지만 교회 건물을 채우는 것 자체가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교회 건물은 하나님이 세상에 도달하기 위해 사용하시는 ‘도구’이지 그 자체가 ‘목표’는 아니다.
역사상 교회 건물은 가득 찼지만, 오히려 지역 사회는 지옥 같았던 적이 너무 많았다.
모든 교회의 위대한 경험은 두 가지를 지향해야 한다.
아마도 교회의 건강함과 영적 거듭남의 정도는, 우리가 어떻게 교회 건물을 채워가는 지가 아니라 어떻게 교회를 비우는 지로 측정해야 할 것이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사람들을 교회 건물로 채우는 것을 강조하면서 그들을 밖으로 내보내는 것에 어려움을 겪어본 적이 있는가?
칼 베이터스(Karl Vaters)은 네 권의 저자로 거의 40년 동안 목회를 해왔다. 그는 캘리포니아 오렌지 카운티의 건강한 작은 교회인 코너스톤 크리스천 펠로우십(Cornerstone Christian Fellowship)의 목회자이며, 그 곳에서 아내 셸리(Shelley)와 27년 넘게 목회했다. 그의 사명은 작은 교회의 목회자들이 목회하면서 생기는 독특한 장점을 활용하여 잘 이끌어갈 수 있도록 자원을 찾도록 돕는 데에 있다. 칼은 KarlVaters.com에서 작은 교회들의 번영을 돕기 위한 자원을 제작하고, 작은 교회들이 COVID-19 위기와 후유증과 관련된 문제들을 다룰 수 있도록 새로운 자원으로 정기적으로 업데이트되는 S.P.A.R.K. 온라인(S.P.A.K. Online)을 만들었다.
Churchleaders.com에 게시된 "Jesus Never Told Us to Fill Church Buildings"을
문화선교연구원에서 번역하여 한국교회에 공유한다.
(번역자: 이세형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