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미래는 청년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교회마다 다음 세대를 위해 무얼 할까? 를 고민하는 이때, 뭔가를 양보하고 포기해야 하는 시류에 반기를 든 기성세대의 외침처럼 들릴 수 있지만, 정작 이 글을 쓴 이는 청소년 사역에 대한 관련 서적만 스무 권도 넘게 쓴 미국 루터신학교 앤드루 루트 교수다.
국내에 처음 소개된 그의 책 <세속시대의 기독교 신앙 형성>에서 앤드루 루트는 ‘젊음’이 교회를 구원해 줄 거라고 상상하며 ‘젊음’의 정신에 집착하는, 일종의 문화적 우상숭배를 경고한다. 그러면서 ‘신앙’에 대해 말하지만, 정작 현실 너머의 영역, 즉 죽음과 부활, 성령과 변화를 통해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하나님과 관련이 있는 ‘깊은 현실’로서의 신앙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기술한다.
이러한 현실은 ‘진정성(authenticity)과 짝을 이뤄 개인이 느끼는 경험 자체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고 지적한다. 일례를 들면, 어떤 예배가 지루하다면 개인이 가지는 갈망의 깊이와 연관성을 갖고 있지 않으며 억압적이거나 폭력적으로 여겨져 결국 진정성이 없는 것으로 치부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개인의 경험에 초점을 맞추게 되면 자신이 윤리적으로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목표가 되고, 하나님은 내 기분이 좋아지도록 돕는 분으로 인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신앙이 삶을 이끌어가는 동인이 되지 못하거니와 교회는 매력을 기반으로 자아계발을 돕는 곳이 된다.
청년기까지는 교회에 다녔으나, 현재는 다니지 않는 이들을 만날 때가 있다. 그 시기에 어떻게 신앙생활을 했는지 물으면 교회에서 하는 외적인 활동과 봉사에 순전한 마음으로 참여했지만, 그것을 내면화시키고, 삶과 연결하는 주체적 신앙인으로 살지 못했다는 답변을 종종 듣는다. 청년들이 많이 모이고, 교회 내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청년기 이후의 신앙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이 책의 후반부가 ‘신비로운 연합’이라는 주제를 해법의 방향으로 제시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교회라는 제도의 멤버십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한 인격 곧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 하나님의 이야기에 참여하고, 이것이 존재의 변화로 이어지는 영적 역동성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죽음이라는 자기 비움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빌립보서 2장의 예수께서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셔 우리의 인격에 참여하신 것처럼 관계를 맺는 연합이란 자기 중심성에 고착된 자아를 부정할 때 시작된다. 물론 여기에서의 자기부정은 개인의 고유성을 훼손하는 것이 아닌, 삼위일체 하나님의 존재 방식인 페리코레시스(perichorésis)에 참여하는 것이다. 성부•성자•성령 하나님의 세 위격이 상호내주를 통해 고유성과 일체성의 조화를 이룬 것처럼 연합의 삶으로 초대되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동반자 관계 속으로 들어갈 때, 삶은 치료적인 수준에서 머물지 않고 사역적인 단계로 나아간다. 존재론적인 변화를 경험하며 계속 성숙하고 성장하는 사역자가 되는 것이다.
그럴 때 교회는 예수의 실제적 임재를 경험하는 곳이 된다. 자기 발전과 재미를 제공하는 기관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섬김을 받고 섬기는 교회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사역하는 교회는 다음의 세 가지 핵심적인 성향을 띤다.
첫째, 감사의 공동체가 된다. 섬김을 먼저 받고, 그 후에야 주는 관계 속에 내가 형성되었음을 긍정하는 공동체다.
둘째, 은사의 공동체가 된다. 재능이 아니라 선물로서 은사를 인식하고, 섬김의 관계 속에 은사를 사용한다.
셋째, 휴식의 공동체가 된다. 개인에게만 초점을 맞출 땐, 쉼 없는 노력만 강조된다. 휴식이라는 선물을 받은 신자와 공동체는 사회의 구조와 시스템 내에서 가장 가난한 자와 가장 부서지기 쉬운 자들에게 휴식의 기회를 제공하고 그들의 인격이 짓밟히지 않게 함으로써 그들이 섬김이라는 값없는 선물을 받을 수 있도록 (그리고 받음으로써 줄 수 있도록)한다.
그렇다면 오로지 교회만이 이러한 존재에 대한 인격적 존중을 경험할 수 있을까? 앤드루 루트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직장과 학교 등 다른 곳에서도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직 교회만이 인격성 자체를 위해 존재하는 유일한 집단이라는 것이다. 교회의 사역은 바로 이 인격성에 근거한 섬김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책 후반부의 이러한 제안은 현장에서 당장 사용할 매뉴얼을 찾는 이들에게는 효용성이 떨어질 수 있다. 또한 미국의 문화적 현실과 신학에 대한 여러 층위들로 이루어져 있어 독자 입장에서는 쉽게 진도가 나가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평소 관계적 삼위일체론에 대한 신학적 관점을 숙지하고, 그것을 목회현장까지 연결하고자 고심한 사역자들에게나 교회 현장의 안과 밖을 살펴보며 충실히 기초를 다지고, 중•장기적인 방향성을 세워가려는 이들에게는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교회의 미래는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저자의 선언처럼 기독교를 향한 여러 부정적인 지표들 속에도 여전히 희망을 잃지 않고, 건강한 교회를 세워가기를 소망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위로와 함께 도전을 줄 것이다.
글. 성현 목사 (필름포럼 대표, 창조의정원교회 담임)
‘교회의 미래는 청년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교회마다 다음 세대를 위해 무얼 할까? 를 고민하는 이때, 뭔가를 양보하고 포기해야 하는 시류에 반기를 든 기성세대의 외침처럼 들릴 수 있지만, 정작 이 글을 쓴 이는 청소년 사역에 대한 관련 서적만 스무 권도 넘게 쓴 미국 루터신학교 앤드루 루트 교수다.
국내에 처음 소개된 그의 책 <세속시대의 기독교 신앙 형성>에서 앤드루 루트는 ‘젊음’이 교회를 구원해 줄 거라고 상상하며 ‘젊음’의 정신에 집착하는, 일종의 문화적 우상숭배를 경고한다. 그러면서 ‘신앙’에 대해 말하지만, 정작 현실 너머의 영역, 즉 죽음과 부활, 성령과 변화를 통해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하나님과 관련이 있는 ‘깊은 현실’로서의 신앙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기술한다.
이러한 현실은 ‘진정성(authenticity)과 짝을 이뤄 개인이 느끼는 경험 자체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고 지적한다. 일례를 들면, 어떤 예배가 지루하다면 개인이 가지는 갈망의 깊이와 연관성을 갖고 있지 않으며 억압적이거나 폭력적으로 여겨져 결국 진정성이 없는 것으로 치부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개인의 경험에 초점을 맞추게 되면 자신이 윤리적으로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목표가 되고, 하나님은 내 기분이 좋아지도록 돕는 분으로 인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신앙이 삶을 이끌어가는 동인이 되지 못하거니와 교회는 매력을 기반으로 자아계발을 돕는 곳이 된다.
청년기까지는 교회에 다녔으나, 현재는 다니지 않는 이들을 만날 때가 있다. 그 시기에 어떻게 신앙생활을 했는지 물으면 교회에서 하는 외적인 활동과 봉사에 순전한 마음으로 참여했지만, 그것을 내면화시키고, 삶과 연결하는 주체적 신앙인으로 살지 못했다는 답변을 종종 듣는다. 청년들이 많이 모이고, 교회 내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청년기 이후의 신앙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이 책의 후반부가 ‘신비로운 연합’이라는 주제를 해법의 방향으로 제시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교회라는 제도의 멤버십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한 인격 곧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 하나님의 이야기에 참여하고, 이것이 존재의 변화로 이어지는 영적 역동성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죽음이라는 자기 비움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빌립보서 2장의 예수께서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셔 우리의 인격에 참여하신 것처럼 관계를 맺는 연합이란 자기 중심성에 고착된 자아를 부정할 때 시작된다. 물론 여기에서의 자기부정은 개인의 고유성을 훼손하는 것이 아닌, 삼위일체 하나님의 존재 방식인 페리코레시스(perichorésis)에 참여하는 것이다. 성부•성자•성령 하나님의 세 위격이 상호내주를 통해 고유성과 일체성의 조화를 이룬 것처럼 연합의 삶으로 초대되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동반자 관계 속으로 들어갈 때, 삶은 치료적인 수준에서 머물지 않고 사역적인 단계로 나아간다. 존재론적인 변화를 경험하며 계속 성숙하고 성장하는 사역자가 되는 것이다.
그럴 때 교회는 예수의 실제적 임재를 경험하는 곳이 된다. 자기 발전과 재미를 제공하는 기관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섬김을 받고 섬기는 교회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사역하는 교회는 다음의 세 가지 핵심적인 성향을 띤다.
그렇다면 오로지 교회만이 이러한 존재에 대한 인격적 존중을 경험할 수 있을까? 앤드루 루트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직장과 학교 등 다른 곳에서도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직 교회만이 인격성 자체를 위해 존재하는 유일한 집단이라는 것이다. 교회의 사역은 바로 이 인격성에 근거한 섬김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책 후반부의 이러한 제안은 현장에서 당장 사용할 매뉴얼을 찾는 이들에게는 효용성이 떨어질 수 있다. 또한 미국의 문화적 현실과 신학에 대한 여러 층위들로 이루어져 있어 독자 입장에서는 쉽게 진도가 나가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평소 관계적 삼위일체론에 대한 신학적 관점을 숙지하고, 그것을 목회현장까지 연결하고자 고심한 사역자들에게나 교회 현장의 안과 밖을 살펴보며 충실히 기초를 다지고, 중•장기적인 방향성을 세워가려는 이들에게는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교회의 미래는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저자의 선언처럼 기독교를 향한 여러 부정적인 지표들 속에도 여전히 희망을 잃지 않고, 건강한 교회를 세워가기를 소망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위로와 함께 도전을 줄 것이다.
글. 성현 목사 (필름포럼 대표, 창조의정원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