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적 교회]한국교회를 돌아보며: ‘맥도날드화 교회를 넘어서는 북미교회들’

2026-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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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북미의 교회들은 그 어느 때보다 잘 조직되어 있습니다. 예배는 분 단위로 설계되고, 설교는 정해진 길이를 넘지 않으며, 새신자 등록에서 정착과 소그룹 배치에 이르는 과정은 표준화된 매뉴얼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사역은 부서로 분업화되었고, 성장은 지표로 환산되며, 사역자의 성패는 그 지표의 기울기로 평가됩니다. 그런데 역설이 있습니다. 이렇게 잘 정비된 교회에서 사람들은 오히려 더 빠르게 빠져나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영국의 신학자 존 드레 인(John Drane)은 바로 이 역설을 신학적 언어로 포착한 학자입니다. 그는 『교회의 맥도날드화(The McDonaldization of the Church)』와 그 후속작 『맥도날드화 이후(After McDonaldization)』에서, 사회학자 조지 리처(George Ritzer)의 '맥도날드화'에 대비되는 ‘탈맥도날드 교회’ 개념을 교회론에 적용합니다. 그의 진단은 단순하지만 북미 및 한국 교회에 깊은 고민거리를 안겨줍니다. 교회는 소비문화를 비판한다고 말하면서, 실은 소비문화의 가장 깊은 작동 논리를 자기 몸에 이식해 왔다는 것입니다. 이 글은 드레인의 '탈맥도날드화(de-McDonaldization)'라는 문제의식을 축으로 삼아, 미국의 교회의 새로운 표현들 운동(Fresh Expressions of Church Movement)이 제시하는 구체적인 모델들을 읽어 보려 합니다.



진단: 교회의 맥도날드화라는 네 개의 축

리처는 패스트푸드 산업의 합리성이 사회 전 영역을 재편하는 방식을 다섯 가지로 정리했습니다. 효율성(efficiency), 계산 가능성(calculability), 예측 가능성(predictability), 비인격적 기술을 통한 통제(control), 그리고 규모(number)입니다. 탈맥도날드화 교회는 이 다섯 가지 축들이 교회 안에서 어떤 현상으로 나타나는지를 보여 주는 데 있습니다: 첫째, 효율성입니다. 최단 시간에 최대의 결과를 내는 것이 미덕이 되면서, 전도는 '방법'이 되고 제자도는 '커리큘럼'이 되었습니다. 회심은 몇 단계의 절차로 압축되고, 신앙의 성숙은 이수 과정으로 대체됩니다. 둘째, 계산 가능성입니다. 셀 수 있는 것만 실재로 인정되면서 출석·헌금·세례의 숫자가 질을 대신합니다. 셋째, 예측 가능성입니다. 어느 지점에서 예배를 드려도 동일한 경험이 보장되는 프랜차이즈 논리가 자리 잡습니다. 넷째, 통제입니다. 회중은 참여자가 아니라 잘 관리되는 수용자, 곧 소비자의 자리로 밀려납니다. 다섯째, 영성보다는 교회 규모가 우선이 됩니다.

리처가 덧붙인 여섯 번째 명제가 결정적입니다. '합리성의 비합리성(irrationality of rationality)'입니다. 완벽하게 합리화된 체계는 마침내 비합리적 결과를 낳는데, 그 결과의 이름이 바로 비인간화입니다. 드레인이 보기에 오늘 교회의 위기는 영적 갈망이 사라져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영성에 대한 갈망은 그 어느 때보다 큰데, 사람들이 그 갈망을 들고 교회로 오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교회가 스스로를 '영적 상품을 효율적으로 공급하는 기관'으로 재정의한 순간, 교회는 ‘거룩한 공간’의 역할을 잃어버립니다.



탈맥도날드화의 신학적 토대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드레인의 처방은 새로운 전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일 탈 맥도날드화가 또 하나의 방법론이 된다면, 그것은 맥도날드화의 논리로 맥도날드화를 치료하려는 자기모순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가 『맥도날드화 이후』에서 제자도와 영성의 회복을 말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탈맥도날드화는 기법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 방식의 문제입니다. 신학적으로 이 전환은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와 연결됩니다. 데이비드 보쉬(David Bosch) 와 크리스토퍼 라이트(Christopher J. H. Wright)가 거듭 강조했듯, 교회가 선교를 소유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교가 교회의 정체성입니다. 선교의 주체가 하나님이라면, 교회의 첫 과제는 생산이 아니라 분별이며, 성과가 아니라 참여입니다.

그 분별의 기준을 성육신이 제공합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셨다(ἐσκήνωσεν, 에스케노센)'고 증언합니다. 레슬리 뉴비긴(Lesslie Newbigin)은 복음은 언제나 문화의 옷을 입되 결코 문화의 포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이 성육신적 특수성이야말로 프랜차이즈 논리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신학적 반대 표현입니다. 즉, 탈맥도날드화된 교회란 효율이 다스릴 수 없는 것들 — 복음, 환대, 영성, 사랑, 우정, 인내 등 — 을 공동체의 중심에 되돌려 놓은 교회입니다. 영국에서 시작된 Fresh Expressions 운동은 2004년 『선교형 교회(Mission-Shaped Church)』 보고서와 로완 윌리엄스(Rowan Williams)의 '혼합 경륜(mixed economy)' 개념을 통해 제도화되었고, 2010년을 전후해 미국으로 건너와 초교파적 운동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이 운동의 핵심 문법은 '이중 청음(double listening)', 곧 복음에 귀 기울이는 동시에 그 문화적 정황에 귀 기울이는 것입니다. 이는 정확히 맥도날드화의 반대 방향입니다. 맥도날드화가 정황을 지우고 모델을 이식한다면, Fresh Expressions는 정황에서 시작해 형태를 새로 빚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도시 문화 가운데 복음에 합당한 다양한 선교적 유형들인, 탈맥도날드 교회 모델을 제시합니다.



탈맥도날드화의 모델들: 미국 Fresh Expressions of Church

아래의 모델들은 각각 맥도날드화의 다섯 축 가운데 하나를 정면으로 무너뜨리는 탈맥도날드화 교회들입니다.


(1) 디너처치(Dinner Church) — 효율성에 대한 저항

워싱턴주 시애틀의 벌론 포스너(Verlon Fosner)가 쇠퇴하던 도심 교회를 식탁 공동체로 전환한 사례와, 뉴욕 브루클린의 세인트 리디아스(St. Lydia's)가 대표적입니다. 이들에게 식사는 예배 전후의 친교 프로그램이 아니라 예배 그 자체입니다. 두 시간이 걸리고, 설거지가 남고, 대화는 통제되지 않습니다. 철저히 비효율적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비효율 안에서 누가복음 14장의 잔치, 곧 갚을 수 없는 이들을 초대하는 그 식탁이 재현됩니다. 낯선 이가 손님이 되고 손님이 가족이 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결코 단축될 수 없습니다.


(2) 메시 처치(Messy Church) — 예측 가능성에 대한 저항

2004년 영국에서 시작되어 미국 여러 교단으로 확산된 이 모델은 이름 자체가 신학적 선언입니다. 아이와 부모가 함께 만들고, 어질러 놓고, 먹고, 짧게 예배합니다. 순서는 매번 다르게 흘러가고 결과는 예측되지 않습니다. 이는 교회에 한 번도 소속된 적 없는 가정들을 겨냥한 형태로서, '정돈된 예배에 적응할 수 있는 사람만 남는' 필터를 의도적으로 제거합니다.


(3) 제3의 장소 교회 — 통제에 대한 저항

도서관 처치, 산 처치, 일터 처치 그리고 알라바마주 셀마시 블루진 처치(BlueJean Church)처럼 예배당이 아닌 '제3의 공간'에서 모이는 형태들(청년들을 위한 창업 플랫폼)입니다. 강단이 없는 공간에서는 목회자가 공간을 통제할 수 없고, 회중은 수동적 수용자에서 대화의 참여자로 이동합니다. 질문이 허용되고, 의심이 추방되지 않으며, 결론이 미리 준비되어 있지 않습니다.


(4) 신수도원 운동 — 계산 가능성에 대한 저항

노스캐롤라이나 더럼의 루트바 하우스(Rutba House)를 비롯한 신수도원(New Monasticism) 공동체들은 '열두 표지(12 Marks)' 가운데 하나로 '안정성(stability)', 곧 한 장소에 머무르겠다는 서약을 둡니다. 성장은 이동으로 얻어지지만 신실함은 머무름으로만 얻어집니다. 버려진 도심에 정착해 이웃과 함께 나이 들어가는 이 공동체들은 숫자로 자신을 증명하기를 처음부터 거부합니다.


(5) 혼합 생태계(Mixed Ecology) — 규모 논리에 대한 저항

Fresh Expressions 운동의 미국적 특징은 기존 회중을 해체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전통적 회중이 그대로 존속하면서 그 곁에 작은 새로운 표현들이 자라나는 구조, 곧 '높은 첨 탑과 새로운 표현이 함께 있는' 형태입니다. 이는 하나의 모델이 모든 정황을 대체해야 한다는 프랜차이즈적 사고 자체를 폐기합니다. 다양성은 과도기가 아니라 목표입니다.



글. 주상락

뉴저지 서번트교회 담임목사

미국 Bakke Graduate University 선교적목회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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