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회로 오라!”는 이 말이 공허하고 부끄러운 시대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육신을 입으신 그리스도에 대한 사실을 온전하게 알”기 위해서는 ‘하나의, 거룩하고, 보편적이며, 사도적인 교회’는 여전히 중요하다(13쪽). 하지만 현실의 교회는 ‘선함’과 거리가 먼 모습으로 사회의 신뢰를 잃고 있다. 교회는 위기의 시대에 피난처가 되지 못하고 오히려 각종 문제들이 사회 뉴스에 보도되면서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고 있다.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따르기보다, 권위주의적 리더십이 ‘머리’를 자처하며 공동체 전체를 통제하기도 하고, ‘거룩함’을 독점하며 자신과 다른 이들을 배제하고, 교회 안에서 벌어지는 각종 사건들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은혜’와 ‘덕’을 내세우며 피해자보다 가해자의 편에 서기도 한다. 『토브처치』는 이러한 교회의 병리적 구조를 ‘유해한 문화’와 ‘가짜 내러티브’로 규정하고, 그 악을 직시하며 균열을 내기 위한 구체적 실천들을 제안한다.
I. 현실 진단: 교회다움을 잃어버리다
이 책이 탄생하게 된 계기는 한때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교회로 꼽히던 윌로우크릭의 사례이다. 저자인 신약학자 스캇 맥나이트와 교사인 그의 딸 로라 베린저는 그 안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과 조직적 은폐를 겪으며, 이를 토대로 교회 구조 전체에 뿌리내린 유해한 문화에 대한 문제 제기로 확장시킨다.
문제는 ‘개인의 일탈’에 국한되지 않으며 교회 안에 깊이 내재된 구조적이고 문화적인 악이다. 저자들은 묻는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는 어떻게 교회를, 매우 인간적이고 연약한 제도 안에서 발견되는 그것의 실제적인 어둠과 위험을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예수께서 지으신 신성한 유기체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14쪽)
II. 문제 분석: 교회를 병들게 한 유해한 문화
이 책은 교회다움을 잃은 작금의 상황을 개인 윤리의 실패로 축소시키지 않는다. 저자들은 앤디 크라우치의 주장을 빌려 문화란 세계관, 곧 “삶을 이해하고, 분석하고, 생각하는 방식”만이 아니라 “인간이 세상에 대해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본다. 즉 언어, 행동, 교육, 관행, 정책, 권력의 방식까지 포함하는 포괄적 구조다. “문화는 우리의 행동을 통해 우리의 사고를 형성한다.”는 말처럼, 교회도 구성원들이 반복하는 실천을 통해 그 문화를 유지하거나 변화시킨다.(42-43쪽)
이때 ‘가짜 내러티브’는 단순한 설교나 이야기 구조가 아니라, 리더가 권력 유지를 위해 조작하는 교회의 지배적인 담론을 가리킨다. 비판자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가스라이팅하며, 진실을 왜곡, 억압한다. 가해자를 희생자로 만들고, 회중의 충성을 유도하는 프레임 짜기의 언어적 장치이다.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식의 영적 통제는 공동체를 침묵과 죄책감 속에 가둔다.
저자들이 제시한 유해 문화의 조기 경고 신호는 다음의 두 가지이다. 첫째, 자기도취적 리더십이다. 이러한 리더는 자신을 ‘기름부음 받은 자’로 내세우며 권위를 절대화하고 공동체를 장악한다. 둘째, 두려움을 통해 통제하는 문화이다. 리더의 비판을 금기시하며 회중의 자발적 복종을 유도한다. 리더 중심의 폐쇄적인 의사결정 구조, 거부할 수 없는 충성적 문화, 성역이 된 리더에 대한 무비판적 믿음은 결국 회중을 교묘한 방식으로 길들이는 헤게모니 구조를 만든다.
Ⅲ. 대안 제안: ‘토브 써클’을 통한 선한 교회 문화 만들기
그렇다면 어떻게 이러한 유해한 문화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 이 책이 제시하는 해답은 ‘토브(Tov)’, 곧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것에서 시작된다. ‘토브’는 단순히 도덕적 선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속성과 계획에서 나타나는 선함의 총체이며, “그분이 계획하신 창조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갈망으로 우리를 이끈”다(143쪽).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은 ‘토브’의 완벽한 모델이며, 그 관대한 사랑이 복음(선한 소식)이다. 그리고 그 사랑이 오늘 우리의 삶 속에 드러나는 것은 성령의 임재의 증거이다.
그러므로 이 책이 말하는 ‘토브처치’(a church called tov)란, 삼위일체 하나님의 선하심 속에서 기존 교회의 권력 구조와 문화에 균열을 내며 치유와 회복의 문화를 추구하고 실천한다. 이를 위해 선함의 습관을 키우는 ‘토브 써클’, 곧 일곱 가지 선함의 핵심 요소들의 순환을 제시한다. 이 써클은 공동체적 실천을 통해 선한 문화를 재형성하는 길이다.
- 공감 키우기: 자아도취 리더십에 저항하며 타인의 고통에 귀 기울이는 긍휼의 문화를 만들고 불균형한 권력 구조와 의사소통 구조를 조정하기
- 은혜 키우기: 두려움 기반의 통제에 저항하며 수용과 자비의 문화 만들기
- 사람을 우선시하기: 기관과 시스템의 변질을 감시, 저항하며 사람 중심의 문화 만들기
- 진실 말하기: 조작된 내러티브를 알아차리고 저항하며, 죄를 진심으로 회개하며 진실의 편에 서기
- 정의를 키우기: 충성의 문화를 넘어서, 약자를 향한 정의와 책임을 실천하기
- 섬김 키우기: 셀럽 리더의 무비판적 수용을 거부하고 섬김과 겸손을 실천하기
- 그리스도 닮기: 리더 중심의 문화에 저항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따르는 제자 되기
이 책은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듯이 좋은 인격이 선한 구조의 중요한 요소임을 역설한다(마 12:33-35). 그런데 이러한 실천은 선을 추구하는 것뿐 아니라 악에서 돌아서는 것까지도 포함된다. 그저 착한 개인 몇 사람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 토브의 문화는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참여와 진실의 언어, 투명하고 공유되는 구조, 소수의 특정 리더십에게 모든 권력과 권한이 집중되는 방식의 전환을 요청한다.
스탠리 하우어워스가 말하는 ‘이야기 공동체’(narrative community)로서의 교회는, 신자들이 예수 이야기를 따라 덕(virtue)을 형성해 가는 공동체이다. 『토브처치』는 이러한 ‘이야기 공동체’의 윤리적 감각이 어떻게 마비되고 덕 형성에 실패하는지를 지적한다. ‘가짜 내러티브’는 더 이상 예수 이야기를 따르지 않고 리더의 이야기를 추종하게 만들지만, 그리스도의 이야기를 따르는 교회로 다시 회복되어야 한다. ‘토브 써클’은 그런 회복을 위한 구체적 방안이다.
IV. 결론: 왜 지금, 교회의 이야기를 다시 써야 하는가
세계적인 ‘미투’(Me too)와 ‘처치투’(Church too) 운동은 교회가 ‘거룩함’을 말하면서도 거룩하지 않은 내부의 구조적 구조와 문제를 드러낸 신호탄이었다. 여러 교회 지도자들의 성폭력 범죄가 드러나며 사임으로 이어졌지만, 그 자체가 곧 문화의 자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늘도 여전히 조직의 평판과 리더의 권위를 보호하기 위한 지배 내러티브 구조 속에서, 진실은 침묵되고, 피해자의 고통은 외면되며, 회개 대신 방어하곤 한다.1)
이러한 교회의 악한 문화는 단지 교회 내 성폭력만의 문제가 아니다. 불투명한 재정 사용과 전횡, 권력 남용, ‘열정’과 ‘헌신’이라는 이름 아래 강요되는 희생 등 폭력적이고 악한 문화는 다양한 방식으로 반복되고 있다. 이 책은 교회의 문제가 단지 개인의 일탈이나 특정 사건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라, 불의와 침묵, 심지어 범죄를 가능하게 하는 권력 구조, 리더십 문화, 그리고 진실을 은폐, 왜곡하고 침묵에 동조하게 만드는 내러티브에 있다고 말한다. 회개와 은혜를 말해야 할 교회가 실제로는 평화보다 권력을, 정의보다 충성을, 진실보다 이미지를, 회복보다 방어를 우선시한다는 것이다. 『토브처치』는 이 지점에서 오늘의 교회가 직면하는 문제들이 공유하는 문화를 꿰뚫으며 질문을 던진다. 지금 교회는 과연 누구의 이야기를 살아내고 있는가, 하고 말이다. 그러나 결정적인 지점에서 한계가 있다. 이 책이 문화적 전환을 말하지만, 대안에서 여전히 개인의 도덕성과 인격 변화에 기댄다는 점이다. 공동체는 개인의 합인가? 혹은 그 이상인가? 라인홀드 니버가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에서 강조했듯이, 도덕적 개인들이 모인 집단이라도 개인의 선함을 배반하고 이기적이고 비도덕적인 선택을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교회 문화의 전환은 개인의 미덕을 넘어 구조와 내러티브의 재설계를 요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오늘날 교회가 직면한 무감각과 침묵을 뒤흔들며, ‘하나님의 선하심’(토브)을 공동체의 문화로 훈련하고 회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보인다. 중요한 것은 교회의 회복이 단지 이미지 쇄신이나 사회적 신뢰 회복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 구조의 전환, 곧 교회가 어떤 이야기를 살아낼 것인가에 대한 윤리적 선택이다.
교회는 지금 누구의 이야기를 살아내고 있는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예수의 이야기를 따르는 데 있다. 교회는 회개와 은혜의 이야기, 진실과 정의의 이야기를 회복해야 한다. 주님의 몸된 교회를 이루는 나와 우리 모두의 문제로 여기며 교회에 ‘토브의 문화’를 일구어야 한다. 교회가 신실함을 증언하는 거룩한 공동체가 되기 위해, 우리는 교회 안의 이야기를 다시 써야 한다. 책 『토브처치』는 그 회복과 치유의 이야기를 지금 여기서 시작하라고 요청한다.
김지혜 목사(문화선교연구원 책임연구원)
1) 빌 하이벨스는 이미 은퇴 4년 전 내부 조사를 받았으나 별다른 조치 없이 목회 활동을 이어갔고, 수많은 여성들의 증언과 언론 보도가 있은 후에야 “교회 사역에 방해가 될까봐”라는 이유로 은퇴를 6개월 앞당겼을 뿐이다. 당시 교인들은 그에게 기립 박수를 보냈다. 신학자 존 하워드 요더 역시 20여 년간 성폭력을 저질렀으나 그 사실이 공론화된 것은 1992년, 피해자 회복과 공동체 성찰은 그의 사후 16년이 지난 시점에야 시작되었다.

“교회로 오라!”는 이 말이 공허하고 부끄러운 시대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육신을 입으신 그리스도에 대한 사실을 온전하게 알”기 위해서는 ‘하나의, 거룩하고, 보편적이며, 사도적인 교회’는 여전히 중요하다(13쪽). 하지만 현실의 교회는 ‘선함’과 거리가 먼 모습으로 사회의 신뢰를 잃고 있다. 교회는 위기의 시대에 피난처가 되지 못하고 오히려 각종 문제들이 사회 뉴스에 보도되면서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고 있다.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따르기보다, 권위주의적 리더십이 ‘머리’를 자처하며 공동체 전체를 통제하기도 하고, ‘거룩함’을 독점하며 자신과 다른 이들을 배제하고, 교회 안에서 벌어지는 각종 사건들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은혜’와 ‘덕’을 내세우며 피해자보다 가해자의 편에 서기도 한다. 『토브처치』는 이러한 교회의 병리적 구조를 ‘유해한 문화’와 ‘가짜 내러티브’로 규정하고, 그 악을 직시하며 균열을 내기 위한 구체적 실천들을 제안한다.
I. 현실 진단: 교회다움을 잃어버리다
이 책이 탄생하게 된 계기는 한때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교회로 꼽히던 윌로우크릭의 사례이다. 저자인 신약학자 스캇 맥나이트와 교사인 그의 딸 로라 베린저는 그 안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과 조직적 은폐를 겪으며, 이를 토대로 교회 구조 전체에 뿌리내린 유해한 문화에 대한 문제 제기로 확장시킨다.
문제는 ‘개인의 일탈’에 국한되지 않으며 교회 안에 깊이 내재된 구조적이고 문화적인 악이다. 저자들은 묻는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는 어떻게 교회를, 매우 인간적이고 연약한 제도 안에서 발견되는 그것의 실제적인 어둠과 위험을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예수께서 지으신 신성한 유기체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14쪽)
II. 문제 분석: 교회를 병들게 한 유해한 문화
이 책은 교회다움을 잃은 작금의 상황을 개인 윤리의 실패로 축소시키지 않는다. 저자들은 앤디 크라우치의 주장을 빌려 문화란 세계관, 곧 “삶을 이해하고, 분석하고, 생각하는 방식”만이 아니라 “인간이 세상에 대해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본다. 즉 언어, 행동, 교육, 관행, 정책, 권력의 방식까지 포함하는 포괄적 구조다. “문화는 우리의 행동을 통해 우리의 사고를 형성한다.”는 말처럼, 교회도 구성원들이 반복하는 실천을 통해 그 문화를 유지하거나 변화시킨다.(42-43쪽)
이때 ‘가짜 내러티브’는 단순한 설교나 이야기 구조가 아니라, 리더가 권력 유지를 위해 조작하는 교회의 지배적인 담론을 가리킨다. 비판자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가스라이팅하며, 진실을 왜곡, 억압한다. 가해자를 희생자로 만들고, 회중의 충성을 유도하는 프레임 짜기의 언어적 장치이다.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식의 영적 통제는 공동체를 침묵과 죄책감 속에 가둔다.
저자들이 제시한 유해 문화의 조기 경고 신호는 다음의 두 가지이다. 첫째, 자기도취적 리더십이다. 이러한 리더는 자신을 ‘기름부음 받은 자’로 내세우며 권위를 절대화하고 공동체를 장악한다. 둘째, 두려움을 통해 통제하는 문화이다. 리더의 비판을 금기시하며 회중의 자발적 복종을 유도한다. 리더 중심의 폐쇄적인 의사결정 구조, 거부할 수 없는 충성적 문화, 성역이 된 리더에 대한 무비판적 믿음은 결국 회중을 교묘한 방식으로 길들이는 헤게모니 구조를 만든다.
Ⅲ. 대안 제안: ‘토브 써클’을 통한 선한 교회 문화 만들기
그렇다면 어떻게 이러한 유해한 문화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 이 책이 제시하는 해답은 ‘토브(Tov)’, 곧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것에서 시작된다. ‘토브’는 단순히 도덕적 선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속성과 계획에서 나타나는 선함의 총체이며, “그분이 계획하신 창조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갈망으로 우리를 이끈”다(143쪽).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은 ‘토브’의 완벽한 모델이며, 그 관대한 사랑이 복음(선한 소식)이다. 그리고 그 사랑이 오늘 우리의 삶 속에 드러나는 것은 성령의 임재의 증거이다.
그러므로 이 책이 말하는 ‘토브처치’(a church called tov)란, 삼위일체 하나님의 선하심 속에서 기존 교회의 권력 구조와 문화에 균열을 내며 치유와 회복의 문화를 추구하고 실천한다. 이를 위해 선함의 습관을 키우는 ‘토브 써클’, 곧 일곱 가지 선함의 핵심 요소들의 순환을 제시한다. 이 써클은 공동체적 실천을 통해 선한 문화를 재형성하는 길이다.
이 책은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듯이 좋은 인격이 선한 구조의 중요한 요소임을 역설한다(마 12:33-35). 그런데 이러한 실천은 선을 추구하는 것뿐 아니라 악에서 돌아서는 것까지도 포함된다. 그저 착한 개인 몇 사람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 토브의 문화는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참여와 진실의 언어, 투명하고 공유되는 구조, 소수의 특정 리더십에게 모든 권력과 권한이 집중되는 방식의 전환을 요청한다.
스탠리 하우어워스가 말하는 ‘이야기 공동체’(narrative community)로서의 교회는, 신자들이 예수 이야기를 따라 덕(virtue)을 형성해 가는 공동체이다. 『토브처치』는 이러한 ‘이야기 공동체’의 윤리적 감각이 어떻게 마비되고 덕 형성에 실패하는지를 지적한다. ‘가짜 내러티브’는 더 이상 예수 이야기를 따르지 않고 리더의 이야기를 추종하게 만들지만, 그리스도의 이야기를 따르는 교회로 다시 회복되어야 한다. ‘토브 써클’은 그런 회복을 위한 구체적 방안이다.
IV. 결론: 왜 지금, 교회의 이야기를 다시 써야 하는가
세계적인 ‘미투’(Me too)와 ‘처치투’(Church too) 운동은 교회가 ‘거룩함’을 말하면서도 거룩하지 않은 내부의 구조적 구조와 문제를 드러낸 신호탄이었다. 여러 교회 지도자들의 성폭력 범죄가 드러나며 사임으로 이어졌지만, 그 자체가 곧 문화의 자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늘도 여전히 조직의 평판과 리더의 권위를 보호하기 위한 지배 내러티브 구조 속에서, 진실은 침묵되고, 피해자의 고통은 외면되며, 회개 대신 방어하곤 한다.1)
이러한 교회의 악한 문화는 단지 교회 내 성폭력만의 문제가 아니다. 불투명한 재정 사용과 전횡, 권력 남용, ‘열정’과 ‘헌신’이라는 이름 아래 강요되는 희생 등 폭력적이고 악한 문화는 다양한 방식으로 반복되고 있다. 이 책은 교회의 문제가 단지 개인의 일탈이나 특정 사건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라, 불의와 침묵, 심지어 범죄를 가능하게 하는 권력 구조, 리더십 문화, 그리고 진실을 은폐, 왜곡하고 침묵에 동조하게 만드는 내러티브에 있다고 말한다. 회개와 은혜를 말해야 할 교회가 실제로는 평화보다 권력을, 정의보다 충성을, 진실보다 이미지를, 회복보다 방어를 우선시한다는 것이다. 『토브처치』는 이 지점에서 오늘의 교회가 직면하는 문제들이 공유하는 문화를 꿰뚫으며 질문을 던진다. 지금 교회는 과연 누구의 이야기를 살아내고 있는가, 하고 말이다. 그러나 결정적인 지점에서 한계가 있다. 이 책이 문화적 전환을 말하지만, 대안에서 여전히 개인의 도덕성과 인격 변화에 기댄다는 점이다. 공동체는 개인의 합인가? 혹은 그 이상인가? 라인홀드 니버가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에서 강조했듯이, 도덕적 개인들이 모인 집단이라도 개인의 선함을 배반하고 이기적이고 비도덕적인 선택을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교회 문화의 전환은 개인의 미덕을 넘어 구조와 내러티브의 재설계를 요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오늘날 교회가 직면한 무감각과 침묵을 뒤흔들며, ‘하나님의 선하심’(토브)을 공동체의 문화로 훈련하고 회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보인다. 중요한 것은 교회의 회복이 단지 이미지 쇄신이나 사회적 신뢰 회복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 구조의 전환, 곧 교회가 어떤 이야기를 살아낼 것인가에 대한 윤리적 선택이다.
교회는 지금 누구의 이야기를 살아내고 있는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예수의 이야기를 따르는 데 있다. 교회는 회개와 은혜의 이야기, 진실과 정의의 이야기를 회복해야 한다. 주님의 몸된 교회를 이루는 나와 우리 모두의 문제로 여기며 교회에 ‘토브의 문화’를 일구어야 한다. 교회가 신실함을 증언하는 거룩한 공동체가 되기 위해, 우리는 교회 안의 이야기를 다시 써야 한다. 책 『토브처치』는 그 회복과 치유의 이야기를 지금 여기서 시작하라고 요청한다.
김지혜 목사(문화선교연구원 책임연구원)
1) 빌 하이벨스는 이미 은퇴 4년 전 내부 조사를 받았으나 별다른 조치 없이 목회 활동을 이어갔고, 수많은 여성들의 증언과 언론 보도가 있은 후에야 “교회 사역에 방해가 될까봐”라는 이유로 은퇴를 6개월 앞당겼을 뿐이다. 당시 교인들은 그에게 기립 박수를 보냈다. 신학자 존 하워드 요더 역시 20여 년간 성폭력을 저질렀으나 그 사실이 공론화된 것은 1992년, 피해자 회복과 공동체 성찰은 그의 사후 16년이 지난 시점에야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