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오 14세의 인공지능 관련 회칙과 그 배경
교황 레오 14세는 2026년 5월 25일 『고귀한 인류: 인공지능 시대 인간됨의 보호에 관하여(Magnifica Humanitas: On Safeguarding the Human Person in the Time of Artificial Intelligence』라는 제목의 첫 번째 회칙을 발표했다. 이 회칙은 인공지능이라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짚어 보고, 가톨릭교회의 사회교리 전통과 전임 교황들의 회칙을 통해 발전해 온 기독교적 원칙들을 확인한 뒤 이에 입각하여 문제의 해법과 구체적인 실천 방향을 제시한다. 이 회칙의 핵심 요지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인공지능과 디지털 기술의 발전이 그 자체로 인류 문명의 위협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이 현실의 차원에서 효율성과 생산성을 최우선의 가치로 여기는 사조 안에서 활용된다면 소수의 인공지능 및 디지털 권력자들을 위해 절대다수의 존엄성이 훼손되고, 많은 사람이 새로운 유형의 통제와 지배에 복속되는 노예 상태로 전락할 수 있다. 교회는 사회문제에 단순히 개입하려는 것이 아니라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가 요청하는 책임 있는 참여를 위해 이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것은 기독교적 전통에 입각한 목소리, 곧 인간의 존엄성과 공동선, 정의에 기초한 평화를 위한 목소리이다.
교황의 회칙은 기술 자체를 거부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술이 태초부터 인간의 자율성과 자유를 실현하는 실존적 도구였음을 지적한다. (제4항) 그러나 동시에 교황은 기술이 현실적인 차원에서 가치중립적이라기보다 그것을 개발하고 활용하는 과정에 얽혀 있는 생산자, 투자자, 정책 입안자와 실행자, 사용자의 특성을 반영한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제9항) 다시 말해 인공지능 기술은 우리 사회를 반영하는 일종의 거울인 것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인공지능 기술과 관련하여 중요한 것은 기술 자체라기 보다 그 이면에 흐르고 있는 기조이다. 교황은 그 기조로서 기술관료적 패러다임을 지목하고, 이를 위험한 것으로 규정한다. 이는 앞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회칙 『찬미받으소서』에서 지적한 우리 시대의 경향으로서 효율성과 통제, 이윤의 논리를 바탕으로 개인과 사회, 경제를 이끌어 가는 태도를 뜻한다. (제43항) 이 경향성 안에서 기술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모든 것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나아가 무엇이 보존되고 무엇이 폐기되어야 하는지를 지시하고, 피조물을 착취의 대상으로, 인간을 효율성과 생산성, 이윤의 극대화를 위한 체제의 톱니바퀴로 환원한다. 이러한 기조 안에서 인공지능은 인류 역사상 전례 없는 힘을 가지게 되었다. 이전의 주요 기술들이 주로 국가의 관리와 통제를 받아 왔던 것과 달리 오늘날 인공지능 기술은 초국가 기업을 대표로 하는 민간 주체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다시 말해 인공지능 기술을 바탕으로 형성되는 권력이 점차 “사적인 성격”을 띠게 된 것이다. (제5항)
바벨탑이 아닌 예루살렘을 재건하는 기술
교황의 회칙은 인공지능 기술이 인간의 존엄성과 공동선을 보존하고 증진하는 방향으로 개발되고 활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회칙은 성서에 나타난 두 가지 상징, 곧 바벨탑 건설과 예루살렘 재건을 통해 그 방향을 제시한다. (제7-10항)
바벨탑은 하나의 언어, 하나의 기술, 하나의 방향에 의해 추진된 프로젝트였다. 하나됨은 일견 좋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하나”가 소수의 권력을 가진 이들이 제시하는 방향 안에서 절대다수를 침묵시키는 것이라면 그것은 전체주의적인 기획으로 변질될 수 있다. (제134, 216-217항) 이러한 획일화와 균질화 안에서 다양성은 제거되고, 힘과 자본에 의해 억눌린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게 된다. 교황은 특히 인공지능 기술의 개발과 활용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노동 착취를 고발하면서 이 문제를 지적한다. 데이터 라벨링과 모델 훈련, 유해 콘텐츠 검열을 담당하는 저임금 노동자들, 인공지능 산업의 물질적 기반이 되는 희토류와 광물을 채굴하는 노동자들의 현실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제173항) 특히 글로벌 사우스를 포함한 취약한 지역과 계층, 여성과 청소년의 노동이 기술 발전이라는 이름 아래 은폐되고 있다는 점에서 인공지능 산업의 화려한 외관 뒤에 누가 어떠한 대가를 지불하고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이와 달리 느헤미야의 예루살렘 재건은 권력을 가진 이들로부터 하향식으로 하달된 일방적 기획이 아니었다. 느헤미야는 먼저 기도하고, 현실을 관찰하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부터 이 일을 시작했다. 이후 가족과 제사장, 장인, 지도자와 청년에게 각자의 역할을 맡기고, 공동체의 목소리와 의견을 반영하면서 재건을 추진했다. 이는 단순히 성벽과 도시를 다시 쌓아 올리는 일이 아니라 무너진 공동체 자체를 재건하는 운동이었다. 교황의 회칙은 이 지점에서 인공지능 기술의 개발과 활용이 소수의 이익과 권력 독점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공동선과 존엄성을 보존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다양한 계층과 지역 사람들과 공동체들의 목소리가 반영되어야 하고, 진리와 노동, 자유의 본질적 가치가 지켜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제131-181항)
진리는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서만 유지되고 유통되는 것이 아니라 인류 전체가 추구해야 하는 공동선이다. 그러나 인공지능 시대에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생성되고 빠르게 유통되는 허위정보는 인류의 보편적 지향점이자 실존적 근거로서의 진리를 위협하고 있다. 이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합리적 논증을 바탕으로 한 사실 확인과 출처 검증이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인공지능을 통해 생성된 정보가 어떠한 절차와 자료를 거쳐 만들어졌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투명성도 보장되어야 한다. 나아가 생성되고 유통되는 정보를 교차 검증하기 위해서는 개인과 가정, 학교와 사회 안에서 정직한 소통이 이루어져야 하며, 언론과 학계를 포괄하는 전문가 집단과의 협업도 필수적이다. 민주주의와 공동체는 구성원들이 모든 문제에 동일한 의견을 가질 때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무엇이 사실인지 함께 확인하고 토론할 수 있을 때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제137항)
노동은 소득을 창출하기 위한 단순한 수단이 아니다. 노동은 인간의 인격과 자유, 창의성, 협력과 같은 본질적 존엄성을 실현하는 조건이자 계기가 된다. (제149항) 그러나 인공지능 산업에서 앞서도 지적한 바 있는 데이터 라벨링과 모델 훈련, 유해 콘텐츠 검열 등에 투입되는 노동자들과 인공지능 산업의 물질적 자원이 되는 희토류 및 광물을 채굴하는 노동자들의 현실은 이 산업 역시 저렴한 노동비용과 높은 이윤을 추구하는 기술관료적 패러다임에 기반하고 있음을 폭로한다. 교황의 회칙은 각 노동에 정당한 대가가 주어지는지를 통해 노동자가 한 사람의 인격으로 대우받고 있는지, 아니면 단순한 생산비용으로 취급되고 있는지가 드러난다는 성 요한 바오로 2세의 회칙 『인간 노동』(Laborem Exercens)을 언급한다. (제37항) 이를 바탕으로 회칙은 인공지능 산업과 결부된 노동자들의 관점, 특히 그 가운데서도 사회적 약자들의 관점이 기술개발과 정책 결정에 반영되어야 함을 역설한다.
노동자뿐 아니라 인공지능 기술의 사용자들 또한 디지털 플랫폼의 “디지털 주의력 경제(digital attention economy)”에 의해 수단화되고 있다. 디지털 플랫폼과 인공지능 기술은 사용자의 주의를 포착하여 그들로 하여금 더 많은 시간을 플랫폼과 서비스 안에서 보내게 하고, 점차 해당 서비스에 의존하도록 만든다. 그렇게 붙잡힌 사용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디지털 공간 안에서의 이동과 구매, 인간관계, 취향과 선호 등 자신에 관한 더 많은 데이터를 넘겨준다. 서비스 제공자는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다시 사용자의 행동을 예측하고 특정한 방향으로 유도하며, 그 과정에서 이윤을 얻는다. 교황의 회칙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소수의 권력자와 자본가를 제외한 다수의 노동자와 사용자가 새로운 형태의 노예제적 사슬에 매일 수 있다고 경고한다. (제170-172항)
회칙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인공지능 기술과 디지털 경제를 지탱하는 공급망이 더욱 투명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어떠한 형태의 경쟁 우위도 노동자와 사용자의 착취를 기반으로 이루어지지 않도록 하는 공적 감독 체계 역시 견고하게 마련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기업과 투자자들은 노동자와 사용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구체적인 윤리적 기준을 마련해야 하며, 그것을 실제로 시행할 수 있는 계획 또한 제시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사회적 차원에서 구성된 평가와 감독 시스템을 통해 인공지능 및 디지털 기술 공급자들을 지속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장치도 필요하다. (제179항)
우리는 무엇을 바라는가?
기술은 등장한 이래 인간의 초월적 욕망을 실현하는 도구로 사용되어 왔다. 다시 말해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고, 인간의 삶을 더 나은 것으로 만드는 데 사용되어 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중요한 질문이 생긴다. 인간의 삶에서 무엇이 문제인가?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우리는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
교황의 회칙은 기술관료주의와 더불어 인공지능 기술의 이면에서 작동하는 사조로 트랜스휴머니즘과 일부 포스트휴머니즘에 주목한다. (제115-117항) 이 사조 안에서 인간 삶의 가장 큰 문제는 취약성과 유한성이다. 질병과 노화, 죽음, 물질적·경제적 부족은 그 자체로 극복되어야 할 문제로 간주된다. 나아가 이러한 문제들은 기술적으로 해결할 수 있고, 기술적으로 해결한다면 인간의 삶은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것이 이 사조가 제시하는 약속이다. 그러나 교황의 회칙은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에게 묻는다:
인간 삶의 유한성과 취약성 자체가 문제인가? 아니면 필요 이상으로 더 많은 것을 가지려 하고, 타자와의 공존보다 자기 자신과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신체적·정신적·영적 안녕에만 집착하는 태도가 더 근본적인 문제인가?
물론 회칙은 질병과 고통을 줄이려는 기술적 노력을 부정하지 않는다. 인간의 고통을 치료하고 삶의 조건을 개선하는 기술은 마땅히 장려되어야 한다. 그러나 인간의 취약성과 유한성을 단순히 제거해야 할 결함으로만 이해할 때, 우리는 질병과 장애, 노화와 죽음을 경험하는 사람들까지도 극복되거나 배제되어야 할 존재로 바라볼 위험이 있다. 인간의 한계는 고통의 원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서로를 필요로 하고 돌보며 연대하게 만드는 조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제118-122항)
교황의 회칙은 이 문제 앞에서 성육신을 중요한 상징으로 제시한다. (제232항) 인간은 기술을 통해 자신의 능력과 소유를 채워 나감으로써 스스로를 초월하려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자신을 비워 육신이 되심으로 인간이 되셨다. 인간의 욕망은 때로 자기 자신과 소수 집단의 생존과 이익에 함몰되어 인공지능 기술의 개발과 활용을 이끌어 간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을 내어주심으로 타자를 살리고, 그들과 함께 거하신다.
인공지능 시대, 우리는 무엇을 바라는가?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고자 하는가? 그리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 교황의 회칙이 던지는 질문은 기술이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는가에 관한 질문이 아니다. 더 근본적으로는 우리가 그 기술을 통해 어떠한 인간이 되고자 하는가에 관한 질문이다.
정대경 교수(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레오 14세의 인공지능 관련 회칙과 그 배경
교황 레오 14세는 2026년 5월 25일 『고귀한 인류: 인공지능 시대 인간됨의 보호에 관하여(Magnifica Humanitas: On Safeguarding the Human Person in the Time of Artificial Intelligence』라는 제목의 첫 번째 회칙을 발표했다. 이 회칙은 인공지능이라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짚어 보고, 가톨릭교회의 사회교리 전통과 전임 교황들의 회칙을 통해 발전해 온 기독교적 원칙들을 확인한 뒤 이에 입각하여 문제의 해법과 구체적인 실천 방향을 제시한다. 이 회칙의 핵심 요지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인공지능과 디지털 기술의 발전이 그 자체로 인류 문명의 위협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이 현실의 차원에서 효율성과 생산성을 최우선의 가치로 여기는 사조 안에서 활용된다면 소수의 인공지능 및 디지털 권력자들을 위해 절대다수의 존엄성이 훼손되고, 많은 사람이 새로운 유형의 통제와 지배에 복속되는 노예 상태로 전락할 수 있다. 교회는 사회문제에 단순히 개입하려는 것이 아니라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가 요청하는 책임 있는 참여를 위해 이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것은 기독교적 전통에 입각한 목소리, 곧 인간의 존엄성과 공동선, 정의에 기초한 평화를 위한 목소리이다.
교황의 회칙은 기술 자체를 거부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술이 태초부터 인간의 자율성과 자유를 실현하는 실존적 도구였음을 지적한다. (제4항) 그러나 동시에 교황은 기술이 현실적인 차원에서 가치중립적이라기보다 그것을 개발하고 활용하는 과정에 얽혀 있는 생산자, 투자자, 정책 입안자와 실행자, 사용자의 특성을 반영한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제9항) 다시 말해 인공지능 기술은 우리 사회를 반영하는 일종의 거울인 것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인공지능 기술과 관련하여 중요한 것은 기술 자체라기 보다 그 이면에 흐르고 있는 기조이다. 교황은 그 기조로서 기술관료적 패러다임을 지목하고, 이를 위험한 것으로 규정한다. 이는 앞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회칙 『찬미받으소서』에서 지적한 우리 시대의 경향으로서 효율성과 통제, 이윤의 논리를 바탕으로 개인과 사회, 경제를 이끌어 가는 태도를 뜻한다. (제43항) 이 경향성 안에서 기술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모든 것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나아가 무엇이 보존되고 무엇이 폐기되어야 하는지를 지시하고, 피조물을 착취의 대상으로, 인간을 효율성과 생산성, 이윤의 극대화를 위한 체제의 톱니바퀴로 환원한다. 이러한 기조 안에서 인공지능은 인류 역사상 전례 없는 힘을 가지게 되었다. 이전의 주요 기술들이 주로 국가의 관리와 통제를 받아 왔던 것과 달리 오늘날 인공지능 기술은 초국가 기업을 대표로 하는 민간 주체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다시 말해 인공지능 기술을 바탕으로 형성되는 권력이 점차 “사적인 성격”을 띠게 된 것이다. (제5항)
바벨탑이 아닌 예루살렘을 재건하는 기술
교황의 회칙은 인공지능 기술이 인간의 존엄성과 공동선을 보존하고 증진하는 방향으로 개발되고 활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회칙은 성서에 나타난 두 가지 상징, 곧 바벨탑 건설과 예루살렘 재건을 통해 그 방향을 제시한다. (제7-10항)
바벨탑은 하나의 언어, 하나의 기술, 하나의 방향에 의해 추진된 프로젝트였다. 하나됨은 일견 좋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하나”가 소수의 권력을 가진 이들이 제시하는 방향 안에서 절대다수를 침묵시키는 것이라면 그것은 전체주의적인 기획으로 변질될 수 있다. (제134, 216-217항) 이러한 획일화와 균질화 안에서 다양성은 제거되고, 힘과 자본에 의해 억눌린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게 된다. 교황은 특히 인공지능 기술의 개발과 활용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노동 착취를 고발하면서 이 문제를 지적한다. 데이터 라벨링과 모델 훈련, 유해 콘텐츠 검열을 담당하는 저임금 노동자들, 인공지능 산업의 물질적 기반이 되는 희토류와 광물을 채굴하는 노동자들의 현실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제173항) 특히 글로벌 사우스를 포함한 취약한 지역과 계층, 여성과 청소년의 노동이 기술 발전이라는 이름 아래 은폐되고 있다는 점에서 인공지능 산업의 화려한 외관 뒤에 누가 어떠한 대가를 지불하고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이와 달리 느헤미야의 예루살렘 재건은 권력을 가진 이들로부터 하향식으로 하달된 일방적 기획이 아니었다. 느헤미야는 먼저 기도하고, 현실을 관찰하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부터 이 일을 시작했다. 이후 가족과 제사장, 장인, 지도자와 청년에게 각자의 역할을 맡기고, 공동체의 목소리와 의견을 반영하면서 재건을 추진했다. 이는 단순히 성벽과 도시를 다시 쌓아 올리는 일이 아니라 무너진 공동체 자체를 재건하는 운동이었다. 교황의 회칙은 이 지점에서 인공지능 기술의 개발과 활용이 소수의 이익과 권력 독점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공동선과 존엄성을 보존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다양한 계층과 지역 사람들과 공동체들의 목소리가 반영되어야 하고, 진리와 노동, 자유의 본질적 가치가 지켜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제131-181항)
진리는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서만 유지되고 유통되는 것이 아니라 인류 전체가 추구해야 하는 공동선이다. 그러나 인공지능 시대에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생성되고 빠르게 유통되는 허위정보는 인류의 보편적 지향점이자 실존적 근거로서의 진리를 위협하고 있다. 이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합리적 논증을 바탕으로 한 사실 확인과 출처 검증이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인공지능을 통해 생성된 정보가 어떠한 절차와 자료를 거쳐 만들어졌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투명성도 보장되어야 한다. 나아가 생성되고 유통되는 정보를 교차 검증하기 위해서는 개인과 가정, 학교와 사회 안에서 정직한 소통이 이루어져야 하며, 언론과 학계를 포괄하는 전문가 집단과의 협업도 필수적이다. 민주주의와 공동체는 구성원들이 모든 문제에 동일한 의견을 가질 때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무엇이 사실인지 함께 확인하고 토론할 수 있을 때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제137항)
노동은 소득을 창출하기 위한 단순한 수단이 아니다. 노동은 인간의 인격과 자유, 창의성, 협력과 같은 본질적 존엄성을 실현하는 조건이자 계기가 된다. (제149항) 그러나 인공지능 산업에서 앞서도 지적한 바 있는 데이터 라벨링과 모델 훈련, 유해 콘텐츠 검열 등에 투입되는 노동자들과 인공지능 산업의 물질적 자원이 되는 희토류 및 광물을 채굴하는 노동자들의 현실은 이 산업 역시 저렴한 노동비용과 높은 이윤을 추구하는 기술관료적 패러다임에 기반하고 있음을 폭로한다. 교황의 회칙은 각 노동에 정당한 대가가 주어지는지를 통해 노동자가 한 사람의 인격으로 대우받고 있는지, 아니면 단순한 생산비용으로 취급되고 있는지가 드러난다는 성 요한 바오로 2세의 회칙 『인간 노동』(Laborem Exercens)을 언급한다. (제37항) 이를 바탕으로 회칙은 인공지능 산업과 결부된 노동자들의 관점, 특히 그 가운데서도 사회적 약자들의 관점이 기술개발과 정책 결정에 반영되어야 함을 역설한다.
노동자뿐 아니라 인공지능 기술의 사용자들 또한 디지털 플랫폼의 “디지털 주의력 경제(digital attention economy)”에 의해 수단화되고 있다. 디지털 플랫폼과 인공지능 기술은 사용자의 주의를 포착하여 그들로 하여금 더 많은 시간을 플랫폼과 서비스 안에서 보내게 하고, 점차 해당 서비스에 의존하도록 만든다. 그렇게 붙잡힌 사용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디지털 공간 안에서의 이동과 구매, 인간관계, 취향과 선호 등 자신에 관한 더 많은 데이터를 넘겨준다. 서비스 제공자는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다시 사용자의 행동을 예측하고 특정한 방향으로 유도하며, 그 과정에서 이윤을 얻는다. 교황의 회칙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소수의 권력자와 자본가를 제외한 다수의 노동자와 사용자가 새로운 형태의 노예제적 사슬에 매일 수 있다고 경고한다. (제170-172항)
회칙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인공지능 기술과 디지털 경제를 지탱하는 공급망이 더욱 투명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어떠한 형태의 경쟁 우위도 노동자와 사용자의 착취를 기반으로 이루어지지 않도록 하는 공적 감독 체계 역시 견고하게 마련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기업과 투자자들은 노동자와 사용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구체적인 윤리적 기준을 마련해야 하며, 그것을 실제로 시행할 수 있는 계획 또한 제시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사회적 차원에서 구성된 평가와 감독 시스템을 통해 인공지능 및 디지털 기술 공급자들을 지속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장치도 필요하다. (제179항)
우리는 무엇을 바라는가?
기술은 등장한 이래 인간의 초월적 욕망을 실현하는 도구로 사용되어 왔다. 다시 말해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고, 인간의 삶을 더 나은 것으로 만드는 데 사용되어 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중요한 질문이 생긴다. 인간의 삶에서 무엇이 문제인가?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우리는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
교황의 회칙은 기술관료주의와 더불어 인공지능 기술의 이면에서 작동하는 사조로 트랜스휴머니즘과 일부 포스트휴머니즘에 주목한다. (제115-117항) 이 사조 안에서 인간 삶의 가장 큰 문제는 취약성과 유한성이다. 질병과 노화, 죽음, 물질적·경제적 부족은 그 자체로 극복되어야 할 문제로 간주된다. 나아가 이러한 문제들은 기술적으로 해결할 수 있고, 기술적으로 해결한다면 인간의 삶은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것이 이 사조가 제시하는 약속이다. 그러나 교황의 회칙은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에게 묻는다:
인간 삶의 유한성과 취약성 자체가 문제인가? 아니면 필요 이상으로 더 많은 것을 가지려 하고, 타자와의 공존보다 자기 자신과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신체적·정신적·영적 안녕에만 집착하는 태도가 더 근본적인 문제인가?
물론 회칙은 질병과 고통을 줄이려는 기술적 노력을 부정하지 않는다. 인간의 고통을 치료하고 삶의 조건을 개선하는 기술은 마땅히 장려되어야 한다. 그러나 인간의 취약성과 유한성을 단순히 제거해야 할 결함으로만 이해할 때, 우리는 질병과 장애, 노화와 죽음을 경험하는 사람들까지도 극복되거나 배제되어야 할 존재로 바라볼 위험이 있다. 인간의 한계는 고통의 원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서로를 필요로 하고 돌보며 연대하게 만드는 조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제118-122항)
교황의 회칙은 이 문제 앞에서 성육신을 중요한 상징으로 제시한다. (제232항) 인간은 기술을 통해 자신의 능력과 소유를 채워 나감으로써 스스로를 초월하려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자신을 비워 육신이 되심으로 인간이 되셨다. 인간의 욕망은 때로 자기 자신과 소수 집단의 생존과 이익에 함몰되어 인공지능 기술의 개발과 활용을 이끌어 간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을 내어주심으로 타자를 살리고, 그들과 함께 거하신다.
인공지능 시대, 우리는 무엇을 바라는가?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고자 하는가? 그리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 교황의 회칙이 던지는 질문은 기술이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는가에 관한 질문이 아니다. 더 근본적으로는 우리가 그 기술을 통해 어떠한 인간이 되고자 하는가에 관한 질문이다.
정대경 교수(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