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들, 그 삶의 자리
오늘 한국의 청년들은 전례 없는 복합적 위기의 한가운데 서 있습니다. ‘수저 계급론’, 즉 금수저·흙수저로 상징되는 출생 신분 결정론이 하나의 사회 문법이 된 시대에, 아무리 달려도 결승점이 이미 정해져 있다는 인식이 청년들의 의욕을 잠식하고 있습니다. 사회학자 이철승은 이를 ‘출발선의 불평등’이 아니라 ‘도착선의 불평등’이라 진단합니다. 노력이 결과를 보장하지 않는 구조 앞에서 청년들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기 힘든 형편에 처해 있습니다.
MZ세대 연구자들은 이 세대가 이기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불공정한 헌신을 거부하는’ 세대임을 지적합니다. 소명(calling)보다 경력(career)을, 조직 충성보다 삶의 균형을 선택하는 것은 이기주의의 발로가 아니라, 작동하지 않는 시스템에 대한 합리적 저항입니다. 소명의식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그 형태가 달라진 것입니다.
동시에 이들은 ‘초연결의 역설’ 속에 살고 있습니다. SNS는 그들에게 ‘광장’을 주었지만, 진정한 공동체를 빼앗아 갔습니다. 여러 사람과 온라인상에서 일상을 나눌 정도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지만 여전히 단절감과 외로움을 느끼며 고독감이 깊어 가는 것, 이것이 디지털 세대의 실존입니다. 절대 진리가 부정되는 포스트모던 문화 - 모든 것이 관점이며 하나의 진리란 없다는 세계관 - 속에서 그들은 모호함과 불안 속을 표류합니다. 그리고 ‘나는 누구인가’,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묻습니다. 이 물음은 신앙의 물음과 정면으로 맞닿아 있습니다.
교회 안에 정착하지 못하는 청년들: 무엇이 문제인가?
안타깝게도 이러한 현실과 물음 앞에서 한국 교회는 명료한 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나름대로 다음 세대, 아니 현재 세대인 ‘젊음’을 품고자 노력하는 교회와 신앙인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러한 노력이 열매를 풍성히 거두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연구자들은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거나 정착하지 못하는 이유로 다음을 지적합니다. 위선적 권위, 불공정한 조직문화, 진정성 없는 공동체, 삶의 현실과 동떨어진 신앙이 그것입니다. 이는 단순한 프로그램의 실패가 아니라, 신뢰의 붕괴를 뜻합니다. 포스트모던 감수성을 지닌 청년들이 여전히 전근대적 권위 구조 속에서 신앙을 강요받을 때 갈등은 필연입니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문제는 따로 있습니다. 교회가 ‘진리는 불변하지만 그 진리를 담는 그릇은 끊임없이 개혁되어야 한다’는 개혁 신앙의 정신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는 개혁교회 전통의 정신, 곧 Semper Reformanda가 오늘날 제도적 자기보존의 논리 앞에 무릎을 꿇고 있습니다.
청년들은 완성된 답을 강요받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함께 질문하고 함께 씨름하는 공동체를 원합니다. 교리 중심이 아닌 삶으로 증거되는 신앙, 프로그램 중심이 아닌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공동체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그 갈망 자체가 이미 복음을 향한 목마름입니다.
복음의 대답: 아직도 희망이 있는가?
그렇습니다. 복음은 여전히 답입니다.
첫째, 복음은 청년들의 공정성 갈망에 응답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은 동등합니다. “유대아 사람도 그리스 사람도 없고, 노예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성도 여성도 없습니다.”(갈 3:28, 새한글)는 바울의 선포는 2천 년 전의 혁명이었고, 오늘도 혁명입니다. 능력주의와 계층 불평등으로 신음하는 청년들에게, 교회는 하나님의 형상(Imago Dei), 곧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엄한 존재라는 성경의 인간론을 가장 급진적으로 선포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수저’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 받은 정체성, 이것이 청년들에게 건넬 수 있는 가장 혁명적인 선물입니다.
둘째, 복음은 청년들의 소명 상실에 응답합니다. 하나님이 제정하신 안식일은 생산성이 아닌 존재 자체가 의미 있다는 선언입니다. 성경의 소명(vocation)은 단순한 직업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통해 이 세상에서 하시는 일에 대한 참여입니다. 청년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높은 목표’가 아니라 ‘더 깊은 정체성’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라는 흔들리지 않는 뿌리. 바로 이 뿌리 위에서만 진정한 소명이 자라납니다.
셋째, 복음은 청년들의 공동체 갈망에 응답합니다. 디지털 시대의 역설은, 초연결 사회일수록 더 깊은 고독을 경험한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서로의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갈 6:2), 세대를 가로질러 함께 앉아 삶을 나누는 진정한 공동체가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이 시대 청년들에게 가장 강력한 복음의 증거가 됩니다. 잘 기획된 프로그램보다 하나님의 임재, 설교보다 삶, 조직보다 관계야말로 오늘 우리 교회에 요청되는 전환입니다.
우리의 부르심: 문화 속에서 복음을!
오늘 우리 교회와 신앙인들은 바로 이러한 시대적 요청 앞에 서 있습니다. 어려운 현실임에는 틀림없지만 여전히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복음은 언제나 청년들의 갈망에 응답하기 때문입니다. 그 복음을 어떻게 전하느냐는 것은 우리의 책무입니다. 책무의 관점에서 우리는 문화선교를 말합니다. 문화를 도구로 삼아 복음이 소통되어야 한다는 원칙 아래, 청년 세대의 언어와 감수성을 깊이 이해하면서도 복음의 본질을 타협 없이 전해야 합니다.
포스트모던 문화의 긍정적 유산, 즉 거짓 권위에 대한 비판, 주변화된 목소리에 대한 존중은 수용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상대화하는 허무주의 앞에서는 단호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는 말씀에 근거하여, 진리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참된 자유로 이끄신다는 사실을 증언해야 합니다. 이러한 삶의 자세와 태도는 문화변혁적 신앙과 신학을 요청합니다.
청년 사역은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그것은 삶입니다. 신앙 공동체가 청년들과 함께 앉아 그들의 고통을 듣고, 그들의 질문을 함께 붙들고, 그들의 구조적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하나님 나라의 희망을 함께 살아내는 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문화선교의 과제입니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라”(벧전 3:15)
청년이 길을 묻고 있습니다. 교회가 그 질문에 복음적 삶으로 응답할 때, 그때 우리는 아직도 희망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임성빈(문화선교연구원 CVO, 한국리더십학교장)
청년들, 그 삶의 자리
오늘 한국의 청년들은 전례 없는 복합적 위기의 한가운데 서 있습니다. ‘수저 계급론’, 즉 금수저·흙수저로 상징되는 출생 신분 결정론이 하나의 사회 문법이 된 시대에, 아무리 달려도 결승점이 이미 정해져 있다는 인식이 청년들의 의욕을 잠식하고 있습니다. 사회학자 이철승은 이를 ‘출발선의 불평등’이 아니라 ‘도착선의 불평등’이라 진단합니다. 노력이 결과를 보장하지 않는 구조 앞에서 청년들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기 힘든 형편에 처해 있습니다.
MZ세대 연구자들은 이 세대가 이기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불공정한 헌신을 거부하는’ 세대임을 지적합니다. 소명(calling)보다 경력(career)을, 조직 충성보다 삶의 균형을 선택하는 것은 이기주의의 발로가 아니라, 작동하지 않는 시스템에 대한 합리적 저항입니다. 소명의식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그 형태가 달라진 것입니다.
동시에 이들은 ‘초연결의 역설’ 속에 살고 있습니다. SNS는 그들에게 ‘광장’을 주었지만, 진정한 공동체를 빼앗아 갔습니다. 여러 사람과 온라인상에서 일상을 나눌 정도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지만 여전히 단절감과 외로움을 느끼며 고독감이 깊어 가는 것, 이것이 디지털 세대의 실존입니다. 절대 진리가 부정되는 포스트모던 문화 - 모든 것이 관점이며 하나의 진리란 없다는 세계관 - 속에서 그들은 모호함과 불안 속을 표류합니다. 그리고 ‘나는 누구인가’,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묻습니다. 이 물음은 신앙의 물음과 정면으로 맞닿아 있습니다.
교회 안에 정착하지 못하는 청년들: 무엇이 문제인가?
안타깝게도 이러한 현실과 물음 앞에서 한국 교회는 명료한 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나름대로 다음 세대, 아니 현재 세대인 ‘젊음’을 품고자 노력하는 교회와 신앙인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러한 노력이 열매를 풍성히 거두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연구자들은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거나 정착하지 못하는 이유로 다음을 지적합니다. 위선적 권위, 불공정한 조직문화, 진정성 없는 공동체, 삶의 현실과 동떨어진 신앙이 그것입니다. 이는 단순한 프로그램의 실패가 아니라, 신뢰의 붕괴를 뜻합니다. 포스트모던 감수성을 지닌 청년들이 여전히 전근대적 권위 구조 속에서 신앙을 강요받을 때 갈등은 필연입니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문제는 따로 있습니다. 교회가 ‘진리는 불변하지만 그 진리를 담는 그릇은 끊임없이 개혁되어야 한다’는 개혁 신앙의 정신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는 개혁교회 전통의 정신, 곧 Semper Reformanda가 오늘날 제도적 자기보존의 논리 앞에 무릎을 꿇고 있습니다.
청년들은 완성된 답을 강요받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함께 질문하고 함께 씨름하는 공동체를 원합니다. 교리 중심이 아닌 삶으로 증거되는 신앙, 프로그램 중심이 아닌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공동체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그 갈망 자체가 이미 복음을 향한 목마름입니다.
복음의 대답: 아직도 희망이 있는가?
그렇습니다. 복음은 여전히 답입니다.
첫째, 복음은 청년들의 공정성 갈망에 응답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은 동등합니다. “유대아 사람도 그리스 사람도 없고, 노예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성도 여성도 없습니다.”(갈 3:28, 새한글)는 바울의 선포는 2천 년 전의 혁명이었고, 오늘도 혁명입니다. 능력주의와 계층 불평등으로 신음하는 청년들에게, 교회는 하나님의 형상(Imago Dei), 곧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엄한 존재라는 성경의 인간론을 가장 급진적으로 선포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수저’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 받은 정체성, 이것이 청년들에게 건넬 수 있는 가장 혁명적인 선물입니다.
둘째, 복음은 청년들의 소명 상실에 응답합니다. 하나님이 제정하신 안식일은 생산성이 아닌 존재 자체가 의미 있다는 선언입니다. 성경의 소명(vocation)은 단순한 직업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통해 이 세상에서 하시는 일에 대한 참여입니다. 청년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높은 목표’가 아니라 ‘더 깊은 정체성’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라는 흔들리지 않는 뿌리. 바로 이 뿌리 위에서만 진정한 소명이 자라납니다.
셋째, 복음은 청년들의 공동체 갈망에 응답합니다. 디지털 시대의 역설은, 초연결 사회일수록 더 깊은 고독을 경험한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서로의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갈 6:2), 세대를 가로질러 함께 앉아 삶을 나누는 진정한 공동체가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이 시대 청년들에게 가장 강력한 복음의 증거가 됩니다. 잘 기획된 프로그램보다 하나님의 임재, 설교보다 삶, 조직보다 관계야말로 오늘 우리 교회에 요청되는 전환입니다.
우리의 부르심: 문화 속에서 복음을!
오늘 우리 교회와 신앙인들은 바로 이러한 시대적 요청 앞에 서 있습니다. 어려운 현실임에는 틀림없지만 여전히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복음은 언제나 청년들의 갈망에 응답하기 때문입니다. 그 복음을 어떻게 전하느냐는 것은 우리의 책무입니다. 책무의 관점에서 우리는 문화선교를 말합니다. 문화를 도구로 삼아 복음이 소통되어야 한다는 원칙 아래, 청년 세대의 언어와 감수성을 깊이 이해하면서도 복음의 본질을 타협 없이 전해야 합니다.
포스트모던 문화의 긍정적 유산, 즉 거짓 권위에 대한 비판, 주변화된 목소리에 대한 존중은 수용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상대화하는 허무주의 앞에서는 단호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는 말씀에 근거하여, 진리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참된 자유로 이끄신다는 사실을 증언해야 합니다. 이러한 삶의 자세와 태도는 문화변혁적 신앙과 신학을 요청합니다.
청년 사역은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그것은 삶입니다. 신앙 공동체가 청년들과 함께 앉아 그들의 고통을 듣고, 그들의 질문을 함께 붙들고, 그들의 구조적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하나님 나라의 희망을 함께 살아내는 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문화선교의 과제입니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라”(벧전 3:15)
청년이 길을 묻고 있습니다. 교회가 그 질문에 복음적 삶으로 응답할 때, 그때 우리는 아직도 희망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임성빈(문화선교연구원 CVO, 한국리더십학교장)